우리만의 틈새를 찾아… 뭐라도 되겠지!

 

20~30대 17명 근무 ‘가상 회사’

온라인 인증·수요일마다 출근

꾸준히 하고 싶은 것이 ‘업무’

월급·직책 없지만 규칙적 생활

지난 16일 오전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청년공간유유기지강화’에서 니트컴퍼니 강화점 사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2025.4.16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지난 16일 오전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청년공간유유기지강화’에서 니트컴퍼니 강화점 사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2025.4.16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사훈 : 뭐라도 되겠지!’

지난 16일 오전 11시께 인천 강화군 청년지원센터 ‘청년공간 유유기지 강화’ 사무실에서는 ‘니트컴퍼니’ 강화점 사원들의 열띤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귀를 기울여 보니 ‘칼국수’ ‘떡볶이’ 등의 단어들이 들렸다. 서기는 진지한 표정으로 회의록을 작성하고 있었다. 회의 주제는 ‘점심식사 메뉴 정하기’.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뭐라도 되겠지!’라는 독특한 사훈을 내건 이 회사에는 20~30대 청년 17명이 근무한다. 업무도 명상 20분, 문제집 열 쪽 풀기, 아이패드로 그림 그리기 등 특이하다. 사원들이 꾸준히 하고 싶은 일이라면 뭐든 업무가 된다. 월급, 4대 보험 가입, 직급이나 직책 등은 없다. 사원들은 서로를 닉네임으로 부른다.

니트컴퍼니 강화점은 인천시와 강화군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니트’ 청년들의 가상 회사다.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약자인 니트(NEET)는 학생이나 직장인이 아니면서 직업 훈련도 받지 않는 청년 무직자를 말한다. 니트컴퍼니 입사 조건은 18~38세 니트 청년. 사단법인 ‘니트생활자’가 인천시 청년지원센터인 유유기지 강화를 맡아 관리하면서 강화도에 인천지역 최초 니트컴퍼니가 문을 열었다.

사원들은 매일 온라인에서 출근과 퇴근을 인증하고, 수요일마다 회사로 직접 출근한다. 출근이 늦는 사원 등에게는 유유기지 강화 매니저들이 안부를 묻는다.

사원 개꿩(닉네임, 30대)은 “직장에서 우울증과 불면증을 얻어 퇴사 후에도 새벽 3~4시는 돼야 잠에 들었다”며 “SNS에서 니트컴퍼니의 존재를 알게 됐고 무직 청년들의 직장 생활에 호기심이 생겨 입사를 지원했다”고 말했다. 이어 “출퇴근 인증 덕에 규칙적 생활 리듬을 갖게 됐다. 서로의 일상을 지켜보고 응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흐돌이(34)는 니트컴퍼니 업무로 공인중개사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 공공기관 기간제, 제조기업 직원 등 다양한 회사를 거쳐 니트컴퍼니에 입사했다. 그는 “주로 계약직 직무에 합격해 단기간으로 일을 해왔다”며 “마지막 직장을 그만둔 후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두 번째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또로또냐(21)의 업무는 매일 5천보 걷기와 모의고사 문항 30개 풀기다. 그는 “대학에 들어갔지만 적응하기가 어려워 우울감이 심했다. 동료들과 소통하니 진짜 회사에 다니는 것처럼 느껴져 삶의 활력이 생겼다”고 했다.

이날 사원들의 오후 업무는 ‘산책’. 강화 용흥궁 공원으로 외근을 나갔다. 자연해설사를 꿈꾸는 도라지(30)가 앞장서 제비꽃, 꽃마리, 토끼풀 등 길가에 핀 꽃 이름과 특징을 동료들에게 설명해줬다. 그는 지난해 5월 회사를 그만둔 이후 꽃, 나무 등 자연에 담긴 생태와 문화적 지식 등을 쌓는 공부를 하고 있다.

그는 산책 중 벽돌 틈새에 핀 민들레 앞에 멈춰 섰다. “틈새에 피어난 식물들을 주류에서 벗어났다거나 도태된 것처럼 생각하잖아요. 사실 이 식물들은 오히려 생존하기에 가장 적합한 본인만의 장소를 찾아낸 것이거든요. 쉬었음 청년인 니트컴퍼니 강화점 사원들도 우리만의 틈새를 찾고 있는 게 아닐까요.”(웃음)

/송윤지기자 sson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