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전체를 압축한 듯한 ‘묵언의 기록’
두 작가 표현성, 삶 상징으로 연결
겸허한 울림… 독자적 기법 눈길도

출판미술로 여겨지던 현대목판화가 하나의 예술 장르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전시 ‘한국현대목판화 70년: 판版을 뒤집다’가 경기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경인일보는 경기도미술관과 함께 10회에 걸쳐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는 현대목판화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이번 연재는 전시를 보다 깊이있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현대목판화의 역사를 조명한 이번 전시는 오는 6월29일까지 이어진다. → 편집자 주
내가 현재 서있는 곳에서,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논리나 조리에 맞지 않는 현실과 그 모순으로 인해 미로 같은 삶. 그 와중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으며, 나의 내면은 어떻게 조응하고 있는가, 또 나는 잘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늘 이런 화두를 안고 산다.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어떤 선택과 변화를 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사는 성인이 된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렇다. 그럼에도 답은 좀처럼 얻을 수 없고 생각은 혼란스럽다. 삶이 쉽지 않은 이유다.
윤여걸과 유대수의 작품은 그런 실존적 상황에 투영된 자신을 반영하는 작업이다. 오지 않는 ‘고도’를 막연하게 기다리듯, 어떤 서술이나 단서 없이 삶 전체를 압축한 듯한 화면에, 그런 실존적 자아를 묵언으로 기록 내지는 진술한 형상이다. 시각적 혼돈을 동반하는 숲으로 제시된 막연한 상황, 등장하는 인물의 모호한 포즈, 그리고 판각한 칼맛과 프린팅의 절제된 긴장감에 결과한 이 두 작가의 독자적 표현성은 삶(죽음)에 대한 상징으로 연결된다. 묵직한 도상이다.
윤여걸의 ‘유세차’는 모두 36종(에디션 3), 총 108점으로 구성된 가변 설치 작품이다. 살아남은 이가 죽은 이를 불러서(招魂) 그에게 보내는 묵언의 조사(弔辭)와 조의(弔意)를, 몸에 문신처럼 새겨진 자연 이미지와 다양한 손의 포즈로 형상화했다. 한지에 다색으로 찍은 목판화를 다시 여러 겹의 배접을 통해 묘철이 선명한 릴리프로 완성했다. 칼맛과 목판과 한지 물성이 어우러진 독특한 기법이다. 유대수의 ‘산산수수-이 가득 찬 세상에 나는 여기서’ 연작은 미로와 같은 거대한 숲(삶)에서 길을 찾는, 피투된 존재의 실존을 비의적으로 이미지화했다. 칼칼한 맛으로 구성된 비정형의 숲과 자그마한 인체의 대비가 카오스적인 삶에 대한 답을 구하고 있다. 작가의 현재 내면이 시각화된 형상이다.
두 작가는 오랜 시간 계속해서 작업으로 삶(과 죽음)에 대해 질문을 하고 있다. 깨달음을 향해서 그리고(畵)-깎고(刻)-찍는(印) 이 도저하고도 지난한 목판화 작업은 신산하되, 경건하다. 겸허한 내용의 울림이 독자적 기법과 함께 작품을 보는 내 마음을 붙잡는다. 저절로 길게 지켜보게 된다. 미적 쾌감이 동반된 매력적 작품의 힘이다.
/김진하 미술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