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 영어학원, 사교육기관 분류

운영시간·교육 명확한 규제 없어

현재 ‘유아교육법’과 ‘학원법’은

사교육기관 운영 기준 규정 못해

단속·금지 아닌 조정·기준 필요

김명하 안산대 유아교육과 교수
김명하 안산대 유아교육과 교수

다섯살 민지는 매일 아침 8시 영어학원 버스를 탄다. 민지 부모는 학원비가 연간 3천만원이 넘는다고 말한다. 2023년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4년제 대학의 평균 등록금은 약 675만원이다. 이 수치는 단순한 비교를 넘어 유아 사교육이 어느 수준까지 확대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부모는 비용이 부담스럽지만 아이가 뒤처질까 봐 학원을 그만두기 어렵다.

서울 강남, 서초, 송파 지역을 중심으로 유아 대상 영어학원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들 학원에서는 하루 평균 5시간 이상의 몰입 수업이 이루어지며 일부는 9시간에 이르기도 한다. 유치원이 교육부의 ‘유아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하루 4~5시간 이내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과는 대조된다. 영어학원은 학원법의 적용을 받지만 학원법은 유아 발달에 적합한 기준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유아 영어학원은 법적으로 교육기관이 아닌 사교육기관으로 분류되어 운영 시간이나 교육 내용에 대한 명확한 규제가 부재한 상태다.

지난 2023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현장 강사들은 원어민 교사의 유아교육 이해 부족, 한국어 소통의 어려움, 일방적인 교습 방식 등을 주요 문제로 지적했다. 이로 인해 유아들은 정서적으로 위축되거나 학습에 대한 거부감을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중도 이탈 사례도 꾸준히 나타난다. 유아기의 정서 안정과 발달은 이후 학습과 사회성 형성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이 시기의 학습 환경은 보다 정교한 점검이 필요하다.

사교육 환경의 확산은 공교육에도 영향을 미친다. 공교육이 지향하는 놀이 중심, 전인적 발달 기반의 교육과정은 사교육 중심의 성과 지향적 구조와 충돌하면서 실현 가능성이 제약받고 있다. 학부모들은 입시 경쟁을 현실적인 고민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는 공교육에 대한 신뢰 약화와 사교육 선호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유아 사교육은 ‘7세 고시’란 표현으로 이슈가 되고 있으나 이는 단순히 사회 현상을 분석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법과 제도의 작동 방식도 함께 살펴야 한다. 현재 ‘유아교육법’과 ‘학원법’은 유아 대상 사교육기관에 대한 실질적인 운영 기준을 명확히 규정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유아 영어학원의 교습 연령, 시간, 내용, 교사 자격 등에 대한 기준 마련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단속이나 금지 차원이 아닌, 조정과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유아 사교육은 일정 부분 사회적 수요를 반영한다. 그러나 그 수요가 유아의 발달 특성과 배치되는 방식으로 충족되고 있다면 제도적 조율이 불가피하다. 예컨대 유아 영어학원의 등록 요건에 교사 자격, 교습 시간 상한, 놀이 시간 확보 등을 포함시키는 방안은 검토할 가치가 있다.

유보통합 논의와도 연결 지점을 모색할 수 있다. 유보통합은 기관 통합에만 그치지 않고, 유아교육의 질과 공공성을 높이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민간 사교육의 영향력이 확대된 지금, 공적 체계가 일정한 기준점을 제시하려면 유보통합 체계 내에서 유아교육 전반에 대한 책임 구조와 방향성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

유아 영어학원은 제도적 관리의 공백 속에 놓여 있다. 이는 단순히 영어교육 여부를 둘러싼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 유아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조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기준 설정의 문제다. 부모의 선택을 존중하되, 그 선택이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공적 관점에서 검토될 필요가 있다.

유아교육 정책은 이제 형식적 확대나 선언적 목표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교육 환경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 마련, 공교육 여건의 실질적 보완, 다양한 교육 선택지 사이의 균형을 모색하는 제도적 장치가 요구된다. 유아 영어학원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고 발달 원칙에 기초한 현실적인 유아교육 운영 기준이 새 정권의 유아교육 정책 안에서 마련될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을 점검하고 어떤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지 교육계 안팎의 보다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참여가 요청된다.

/김명하 안산대 유아교육과 교수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