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교원 확보율 높을수록 더 많은 지원금

사립대 대부분 비정규직 교수 늘리기 집착

5년간 정년트랙 전환, 60곳 평균 9명 불과

정부의 무지와 방임이 대학교육 본질 흐려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

국내 대학의 교수사회는 신분제 사회이다. 같은 직급의 전임교수라도 ‘성골’에 비유되는 정년트랙 교원과 ‘진골’ 출신 교수로 불리는 비정년트랙 교원이다. 정년트랙 교수는 일단 임용되면 결격사유가 없는 한 조교수에서 부교수, 정교수로 승진할 수 있을뿐 아니라 정년퇴직이 가능하다. 교수 채용 시 정년트랙은 비정년트랙보다 임용조건이 훨씬 까다로울 뿐 아니라 경쟁률도 매우 높으며 임용 후 대우도 훨씬 더 좋다. 교수가 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는 말은 정년트랙 교수를 지칭한다.

비정년 트랙 교수들은 종류가 상당히 많다. 강의전담교수, 연구전담교수, 산학협력중점교수 외에도 석좌, 초빙, 외래, 특임, 기금, 대우교수 등 무려 60여 가지인데 전부 비정규직이다. 이들은 대학과의 고용계약에 의해 임금, 근무 기간, 직급 등이 결정되고 재계약은 가능하나 승진은 물론 정년도 보장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 이들 중 상당수는 정년트랙 교수들과 똑같이 강의와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비정년 교수들은 ‘계약제 교수’, ‘반값 교수’, ‘무늬만 교수’, ‘비정규직 교수’ 등의 비아냥에 자존심이 상한다. 낮은 임금과 복지 및 승진 불이익 등의 차별 대우는 설상가상이다. 지난달 25일 수원시 영통구 경기대의 대학본부 앞에서 이 대학의 비정년 교수 40여 명이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내세우며 차별철폐 시위를 벌였다. 경기대 내 비정년 트랙 교원은 150여 명으로 전체 교원(500여 명)의 30%인데 이들은 1∼2년 단위로 업적평가를 거쳐 고용계약을 연장하고 있다. 이 대학의 정년트랙 교수 평균 연봉은 1억원 가량이며 비정년 교수는 4천만원 초반대로 알려졌다.

경기대에서 재점화된 이번 논란은 전국의 사립대학들에 내재된 공통적인 문제이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김용호 국회의원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전국 사립대 152개교 중 107곳의 정년트랙 교원의 연 평균 임금은 8천397만원이나 비정년트랙 교원은 4천307만원으로 확인되었다. 대부분의 사립대학들이 고분고분(?)하고 인건비가 매우 저렴한 비정규직 교수 숫자 늘리기에 집착하고 있다. 대학평가의 핵심지표인 ‘전임교원 확보율’이 높을수록 교육부에서 더 많은 지원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서 오너의 친인척은 물론이고 일반 직장에서 정년퇴직하고 늘그막에 교수가 되어 꽃가마(?) 타는 사례도 상당하다. 비정년 교수에 대한 학생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

성골 교수뿐이던 국내 대학사회에 진골 교수들이 등장하게 된 것은 1996년에 김영삼정부가 대학설립준칙주의를 도입하고 대학의 선진화를 표방하며 대학평가를 통한 경쟁력 강화를 주문한 것이 발단이다. 대학설립 준칙주의는 교원(敎員)과 교지(校地), 교사(校舍), 수익용 기본재산 등 정부가 제시한 최소 설립 요건만 갖추면 대학설립을 무제한 허가해주는 제도로 이후부터 전국에 대학 숫자가 급증했다. 대신 정부는 재학생 충원율과 졸업생 취업률, 전임교원 확보율 제고를 조건으로 당근을 제시하며 대학교육의 질적 제고를 유도했다.

2003년 연세대가 국내 최초로 정부의 묵인하에 비정년트랙 교수를 채용하면서 국내 대학사회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지난 15년간 대학등록금 동결에 따른 대학 재정난 가중은 설상가상이었다. 작년 기준 전국 107개 사립대 중 55곳의 비정년 교수 비율이 25%를 넘었다. 심지어 정년, 비정년 트랙 구분 없이 전임교수 전원을 1∼3년 임기의 계약제로 결박한 대학까지 확인된다. 정부의 무지와 방임이 대학교육의 본질을 흐렸다.

하지만 사립대학의 비정규직 교수 해소 노력은 감지되지 않는다. 최근 5년간 비정년 교수가 정년트랙 교수로 전환된 경우는 전국 사립대 60곳에서 평균 9명에 불과했다. 일부 사립대에는 트랙전환제도 자체가 없다. 비정년 교수의 트랙전환을 허용할 경우 대학교육의 질적 하락이 불가피해 학교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고 후진들의 전임교원 진입 기회까지 축소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세계 10대 선진국인 대한민국 대학 교수사회의 민낯이다.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