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정착 故김문호 선생 가족 등

인천출입국, 40명 국적 증서 수여

“대한민국 국민이 돼 감격스러워”

22일 오후 인천상륙작전기념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국적증서 수여식’에서 김한웅(사진 가운데 청색모자)씨를 비롯한 40명의 한국국적 회복 예정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5.4.22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2일 오후 인천상륙작전기념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국적증서 수여식’에서 김한웅(사진 가운데 청색모자)씨를 비롯한 40명의 한국국적 회복 예정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5.4.22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독립운동에 힘썼던 부친의 뜻을 기리며 조국에 돌아올 수 있어 감격스럽습니다.”

독립유공자 고(故) 김문호(1911~1999) 선생의 아들인 김한웅(72)씨는 26년 전 떠났던 모국에 돌아와 국적을 회복하는 소감에 대해 “친일세력을 정리하지 못한 것에 한을 품고 운명하신 부친을 보며 한국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려 했던 적도 있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황해도 해주 출신인 김문호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벌였다. 1941년 광복군 제3징모처 주임위원 겸 선전조장을 맡았고, 1942년엔 조선의용대 분대장으로 활동했다. 1944년부터 1945년 광복이 될 때까지 항일 선전과 한미 합작작전을 지원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인정해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해방 이후 많은 독립운동가가 그랬던 것처럼 김문호 선생의 가족은 한동안 지독한 생활고를 겪었다고 한다. 김한웅씨는 “어린 시절 미아리 묘지 옆 판자촌에서 동냥하다시피 하며 살았다”고 했다. 이어 “1977년엔 지병이 있던 모친이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돌아가셨고 10년 뒤 누님도 30대에 일찍 세상을 떴다”며 “어렵게 초중고등학교 학업을 마치고 한국장학재단 등의 지원을 받아 대학에 입학한 후에야 형편이 조금 나아졌다”고 했다.

부친이 사망한 1999년 미국으로 떠났다가 캐나다에 정착했다는 그는 “미국과 캐나다에선 애국지사와 가족을 극진히 대우한다”며 “이제 한국에서도 독립유공자와 가족을 위한 예우를 다하고 있지만 더 개선됐으면 한다”고 했다.

22일 오후 2시께 인천 중구 인천상륙작전기념관에서는 김씨와 같은 한국 국적 회복 예정자들이 참석한 국적증서 수여식이 열렸다.

인천출입국·외국인청은 올해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6주년을 맞아 김문호 선생의 아들인 김한웅씨, 무공수훈자 고(故) 이용진씨의 증손자인 이태환(9)군, 월남전 참전유공자 김종권씨의 배우자인 김미순(75)씨 등 40명(중국 23명, 대만 5명, 캐나다 3명, 미국 2명 등)에게 국적증서를 수여했다.

국적법에 따라 만 65세 이상 재외동포가 한국 영주를 희망할 경우엔 국내에서는 외국 국적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겠다는 서약(외국국적불행사서약)을 전제로 복수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독립유공자, 국가유공자 등 특별공로자의 후손은 나이에 관계없이 이 서약 후 한국 국적 취득이 허용된다.

송소영 인천출입국·외국인청장은 국적증서 수여식에서 “여러분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다시 맞이하게 돼 기쁘다”며 “우리가 누리고 있는 오늘날의 풍요로운 삶이 선열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잊지 않겠다. 국적을 회복한 여러분들도 대한민국을 위해 기여해 달라”고 했다.

/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