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항, 글로벌 항만 발돋움… 더 높은 도약 모두 합심해야”
강화군 출생, 아버지 영향 화물선 접해… 선박에 대한 꿈 키우다 범양상선 입사
1995년부터 도선사로 항만 인프라 관심, 협의회 활동하며 체선율 줄이기 온힘
인천대교 주경간 폭 800m로 확장 성과 등 15년간 회장으로 항만 발전에 기여도
배후단지 자유무역지역 늑장 추진 쓴소리… “지역·시민·정치권 한목소리 필요”
지난 2004년 인천항은 개항 이후 가장 큰 변화를 맞게 된다.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조수간만의 차이 때문에 그동안 갑문 안쪽에 있던 내항에서만 화물을 처리했으나, 같은 해 연안부두 인근에 있는 인천 남항에 인천컨테이너터미널이 개장하면서 본격적인 외항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인천항이 갑문에서 벗어나면서 물동량은 큰 폭으로 늘어났고, 지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졌다. 이러한 흐름 속에 인천 항만업계의 목소리를 대변할 단체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커지기 시작했다. 당시 항만업계의 의견을 전하는 조직은 인천 경제계를 대표하는 인천상공회의소가 전부였다.
인천 항만업계를 대표하는 단체인 (사)인천항발전협의회는 이렇게 2004년 창립하게 된다. 선사·하역사·창고업체·물류협회 등 인천항 관련 100여개 단체가 참여했고, 현재도 인천항 관련 단체가 실질적인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인천항발전협의회 이귀복(78) 전 회장은 협의회 창립을 주도했고 2010년부터는 회장직을 수행하며 인천항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최근 임기를 마치고 회장직에서 물러난 이귀복 전 회장은 “회장을 맡았던 지난 15년 동안 인천항이 글로벌 항만으로 도약하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 것 같아 뜻 깊다”며 “인천항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데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줘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퇴임 소감을 밝혔다.

그와 인천항과의 인연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다. 인천 강화에서 태어난 이 전 회장은 아버지가 연안 화물선 사업을 하면서 인천항에 처음 터를 잡게 됐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가 인천항에서 화물을 선박에 실어 전라도나 충청도로 운반하는 사업을 했다. 이 때문에 인천항이나 화물선이 다른 아이들보다 익숙했다”며 “제물포고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자유공원에 올라 팔미도를 지나는 대형 선박을 보면서 ‘나도 커다란 배에 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자신의 꿈을 위해 한국해양대학교에 진학한 그는 1972년 범양상선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으로 상선 생활을 시작했다. 전세계 여러 항구를 돌아다니면서 인천항과의 차이를 깨닫게 됐다고 그는 설명한다. 이 전 회장은 “처음 입사할 당시만 하더라도 인천항은 갑문 내 해상공간이 부족해 팔미도 앞바다에서 화물을 내려 짐배로 부두까지 옮겼다”며 “미국 항만에 갔더니 최첨단 하역 장비가 부두에 화물을 하역하고 있었다. 전혀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충격이었다”고 했다. 이어 “인천항이 발전하려면 무엇을 배워야 할지 항상 고민했고, 우리나라 항만에도 새로운 장비가 운영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덧붙였다.

이 전 회장은 1995년부터 도선사로 활동하면서 인천항 인프라 발전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인천항에선 간조 때 대형 선박이 들어오려면 수심이 너무 낮아 외해에서 가다려야 했다”며 “선박 2척 중 한 척은 운항 시각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고 했다.
이 전 회장이 도선사로 활동하던 1990년대부터 인천항의 높은 체선율은 항만 발전에 걸림돌이 돼 왔다. 해양수산부가 1999년 펴낸 ‘수도권 항만 기능정립·재정비계획’을 보면 당시 인천항 체선율은 48.2%에 달했다. 체선율은 선박이 부두에 접안하지 못하고 12시간 이상 대기한 비율을 말한다. 100대 중 48대가 12시간 이상 기다렸다가 인천항에 들어올 수 있었던 셈이다.
당시 기억 때문에 이 전 회장은 인천항발전협의회에서 활동하면서 체선율을 줄이기 위한 수심 확보에 가장 공을 들였다. 그의 노력으로 초기 계획에는 14m였던 인천 신항 진입항로 수심은 16m로 깊어졌고, 인천 항만업계의 숙원사업이던 인천항 제1항로(팔미도~인천 북항) 준설 공사도 정부 예산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이 전 회장은 “항만이 활성화하려면 대형 선박이 쉴 새 없이 드나들 수 있는 환경이 반드시 조성돼야 한다”며 “수심이 깊어져 대형 선박이 원활하게 입출항할 수 있게 되면서 동남아시아 항만으로 전락할뻔한 인천항이 글로벌 항만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고 강조했다.
인천대교 주경간 폭을 800m로 넓힌 것도 이 전 회장이 꼽는 큰 성과 중 하나다. 당시 정부는 인천대교 주경간 너비를 700m로 설계했는데, 주경간 폭이 그대로 확정되면 인천항에 입출항하는 1천500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급 이상 화물선의 교차 통행이 불가능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인천 항만업계를 포함한 시민들이 주경간 폭을 넓혀야 한다고 시민운동을 벌였고, 800m로 최종 확정될 수 있었다. 이 전 회장은 “많은 시민이 힘을 모아 인천대교 주경간 폭을 800m로 확장할 수 있었다”며 “주경간 폭이 넓어지면서 다행히 대형 선박뿐 아니라 글로벌 크루즈도 별다른 제한 없이 들어올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은 “인천항 발전을 위해 필요한 부분이 아직도 많지만, 안타깝게도 인천항만공사나 인천지방해양수산청, 인천시 등 관계기관들이 너무 근시안적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있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용품센터(선박 운항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는 시설) 건립’과 ‘항만 배후단지 자유무역지역 지정’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이 전 회장은 “10년 전부터 인천항이 모항(母港) 크루즈 중심 항만이 될 경우를 대비해 선용품 센터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지만, 공염불에 그쳤다”며 “인천항에서 출발하는 모항 크루즈가 운영돼도 선용품센터가 없어 경제적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올해 인천항에선 역대 가장 많은 15척의 모항 크루즈가 출발한다. 크루즈는 승객이나 승무원이 사용하는 물건들이 많아 모항지 선용품센터에서 많은 제품을 구매한다. 모항 크루즈가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이유다.
하지만 인천항에 있는 선용품 업체는 대부분 영세한 탓에 크루즈에 공급되는 물품 중 상당수는 부산이나 다른 지역의 업체에서 공급하고 있다. 선용품 센터가 있으면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에 규모의 약점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게 이 전 회장의 생각이다.

인천항 항만 배후단지를 자유무역지역으로 지정하지 못하는 것도 뒤늦게 추진했기 때문이라고 이 전 회장은 말한다. 자유무역지역으로 지정되면 임대료 인하, 관세 유보, 세금 감면 등의 혜택으로 외국인 투자유치 확대와 일자리 창출 등의 효과가 있다. 이 때문에 인천 항만업계에선 수년째 고부가가치 물동량 유치를 위해 인천항 항만 배후단지를 자유무역지역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인천항에는 부두 시설만 자유무역지역으로 돼 있다.
이 전 회장은 “항만 배후단지 설계과정에서부터 자유무역지역으로 지정하고, 업체를 모집할 때 이러한 사실을 고지했다면 반대에 부딪혀 정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꼬집어 말했다.
이 전 회장은 “지금이라도 인천항 발전을 위해 정치권과 인천시, 시민단체, 항만관련 기관이 모두 힘을 모아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산은 항만과 관련된 사안에 모든 지역사회가 대응하는데, 인천은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며 “인천항이 정부 정책에서 소외받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이어 “평생을 함께한 인천항이 앞으로 더욱 큰 역할을 하길 바란다. 이를 위해 이제라도 관계기관과 시민단체, 정치권이 하나의 마음을 보여줘야 한다”며 “인천항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도록 후배들의 뒤에서 힘이 닿는 데까지 도움을 주겠다”고 말했다.
■이귀복 前 회장은?
▲1947년 3월 1일 인천 강화 출생
▲인천제물포고등학교 졸업(1966년)
▲한국해양대학교 항해학과 졸업(1972년)
▲1972년 2월 ~ 1994년 7월 범양상선(주) 항해사·선장
▲1995년 2월 ~ 2015년 3월 인천항도선사회 도선사
▲2003년 3월 ~ 2005년 3월 인천항도선사회 회장
▲2006년 2월 ~ 2009년 2월 한국도선사협회 협회장
▲2006년 4월 ~ 2009년 2월 인천항만공사 항만위원
▲2008년 8월 ~ 2009년 7월 인천항만공사 항만위원장
▲2010년 3월 ~ 2025년 4월 인천항발전협의회 회장

/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