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계절, 붉은 동백꽃 핀 선운사
희치한 껍질에 단단해 보이는 줄기
강단있게 무게 지탱하는 모습 감동
생글생글 웃으며 반겨준 효근 스님
감화를 주는 모습 참 ‘수행인’ 다워


무늬만 애국자인 필자도 넉달 동안 거의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오로지 뉴스만 추적하고 있었다.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내려진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니 그것도 준비가 필요했다.
전북 고창에 있는 사찰 선운사의 템플스테이(templestay)를 다녀온 것은 4월16·17일이었다. 템플스테이를 끝내면 절에서는 ‘체험 후기’를 써달라고 용지를 내민다. 아래는 그때 제출한 글을 바탕으로 새롭게 쓴 것이다.
미당(未堂)의 시에서처럼 동백꽃을 보러 왔다가 아니 피어 번번이 돌아간 선운사. 문득 지금 계절이면 되겠구나 싶어 템플스테이를 신청했습니다.
3월 말에서 4월 초에 피는데 올해는 한 달 늦어 아직도 다 벌어지지 않았다는 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동백을 유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제 눈에는 그래도 다 핀 것처럼 보였습니다. 비로소 절정인 동백을 만난 것입니다. 600년 된 3천여 그루의 동백나무는 대웅전 뒤 가파른 산기슭에 무거운 몸뚱이를 누인 채 힘겹게 버티고 있었습니다. 머리가 너무 커서 밑동과 줄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진초록의 반들반들한 이파리 사이에 함초롬 붉은 동백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노란 수술이 꽃을 환하게 해주었습니다. 그중에도 먼저 핀 동백은 활짝 벌어져 나무 전체가 피를 흘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스님은 선운사 동백은 토종이라 꽃이 작고 색깔이 진해서 훨씬 예쁘다고 설명했습니다. 바닥에는 앞서 져버린 꽃들이 무덤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위에 막 떨어진 꽃들은 방긋방긋 웃는 아기 같았습니다. 동백은 꽃이 생생할 때 툭 떨어진다고 합니다.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다짐이라나요?
줄기는 어떻게 생겼나 밑동은 또 어떤가 하면서 슬쩍 치마를 젖히듯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희치희치한 껍질에 단단해 보이는 줄기들이 나타났습니다. 거기에 동백나무의 진면목이 있었습니다. 가늘지만 강단 있게 서서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모습이 퍽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동백은 대웅전 뒤편에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한참 떨어진 암자(내원암)의 입구에도 있었고 차밭 위에도 무성한 숲을 이루며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휙휙’ 바람소리가 섞인 계곡의 웅장한 물소리가 밤새 귓가에서 징소리처럼 퍼져 나갔습니다. 문간방이라 소리는 더 잘 들렸습니다. 지글지글 끓는 방바닥과 문틈으로 들어오는 찬 기운을 맞으며 일찍 잠들어 새벽같이 깨어났습니다. 아침 8시에 기상하는 제가 새벽 2시에 눈을 뜨다니요?
절에서는 새벽 3시에 하루가 시작됩니다. 저는 스스로를 깨우기 위해서라도 자주 절에 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 새벽에 무얼 할까 생각하다가 미당 서정주의 ‘화사집(花蛇集)’을 펼쳤습니다. 시집은 하필 ‘온몸이 달아’ 동네 처녀와 보리밭에서 얼레리 꼴레리 하는 시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절간에서 읽기가 남세스러웠습니다. 저는 속으로 ‘절간도 사람 사는 곳인데 뭐!’하면서 눈으로 읽으며 활발발한 언어를 따라가기도 하고 입으로 낭송하며 육감적인 뉘앙스를 맛보기도 했습니다.
처음 사찰에 도착하자 비구니 효근(曉根) 스님이 생글생글 웃으며 우리를 반겼습니다. 스님은 대추방망이처럼 단단하면서도 해맑은 모습으로 선운사 안내하는 일을 아주 즐겁게 하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 차담(茶談)에서 스님은 평생동안 하루를 24시간, 아니 72시간처럼 살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허비하는 시간이 많으면 시간이 휙 지나는데 온전히 살면 길게 느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절의 주인은 스님입니다. 저는 절에 오면 모습만으로 감화를 주는 스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게 스님의 도력(道力)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효근 스님은 참 ‘수행인’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무들이 오묘한 빛깔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싸라기눈을 뿌려놓은 것 같은 은초록, 겨자빛의 연초록, 사철나무의 진초록, 단풍나무 같은 붉은빛, 듬성듬성 박힌 산벚의 연분홍이 한꺼번에 곱슬곱슬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눈부셨습니다. 찬란했습니다.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아! 살 것 같았습니다.
/김예옥 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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