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성차별 막말’… 교실 속 성인지 감수성 ‘제자리 걸음’
인천 남교사 부적절 언행 ‘시발점’
사이버신고센터 알아도 악영향 우려
스쿨미투 등 SNS공론화 불신 지표
“토론환경 마련으로 교육적 대처를”
최근 인천 한 여자고등학교에서 수업 중 남성 교사가 “가임기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으면 감옥에 가야 공평하다”는 취지의 부적절한 발언을 해 공분을 샀다. 이 사안을 두고 교육계 안팎에선 교사 개인의 일탈로만 볼 문제가 아니라 학교 구성원들의 성인지 감수성 교육 실태를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교사 ‘성차별 발언’ 어떻게 봐야 하나
문제의 발언은 인천 한 여고 A교사가 2학년 ‘정치와 법’ 과목 시간에 헌법재판소의 군 가산점 제도 위헌 판결을 이야기하며 나왔다. 그는 “내가 아는 판결 중 최악의 판결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남성은 군대를 안 가면 감옥에 간다. 아이를 낳지 않은 가임기 여성을 감옥에 보내야 남녀 공평하다”고 했다.
파문이 커지자 인천시교육청은 A교사가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했는지 즉각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교육공무원 징계양정 등에 관한 규칙’에는 품위유지의무 위반 사항으로 성희롱, 성 관련 비위, 학생에 대한 신체적·정신적·정서적 폭력 등으로 구분한다. 위반 사항과 비위 정도에 따라 경징계(견책, 감봉)와 중징계(정직, 강등, 해임, 파면)를 내리도록 한다.
하지만 징계기준에는 ‘성차별 발언’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없다. 이 때문에 인천시교육청은 A교사의 발언이 성희롱에 해당하는지, 학생에 대한 정서적 폭력에 해당하는지 등을 두루 살피고 있다.
류하경(법률사무소 물결) 변호사는 “성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교사의 발언은 아동복지법에 따라 정서적 아동학대에 해당할 수 있다”며 “경찰 조사 단계에서도 미성년자인 학생들이 받았을 충격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학교 측은 해당 교사를 병가 조치해 수업에서 배제했으며 그의 발언이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에 해당하는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4월25일자 4면 보도)
■ 반복되는 교사 막말, 도움 요청 주저하는 학생들
A교사의 발언은 수업을 듣던 학생이 녹음한 파일이 지난 2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X’(옛 트위터)에 올라오면서 공개됐다.
앞서 지난달 서울 한 여고에서도 남성 교사가 수업 중 “여자들의 인생은 아이를 낳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며 “여자의 하체가 가장 왕성하고 튼튼하고 성숙했을 때 낳아야 한다”고 발언한 음성 녹음이 학생들의 제보로 SNS에 공개되기도 했다. → 표 참조

인천에선 앞서 2018년 교사들의 성차별, 성희롱 발언을 SNS를 통해 고발하는 ‘스쿨미투’ 운동이 6개 중·고등학교에서 이뤄진 적이 있다.
인천시교육청은 당시 학생들이 익명 또는 실명으로 신고할 수 있는 ‘성희롱/성폭력 사이버 신고센터’를 만들어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 신고센터의 존재를 모르고 있거나, 알고 있더라도 신고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지난해 A교사의 수업을 들었다는 한 학생은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신고할 수 있는 창구가 있는 걸 알지 못했다”며 “만약 신고하면 생활기록부 작성 등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봐 학생들이 나서기를 꺼리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 “성인지 감수성 교육·정기적 전수조사 필요”
인천시교육청은 학교 내 성교육 담당 교사, 교장·교감 등 관리자, 일반 교사 등을 상대로 성인지 감수성 연수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 교사를 위한 연수는 1년에 1차례 외부 인사를 초청해 강연 형태로 진행되는데 이마저도 신청자를 대상으로 하고, 필수 연수 사항이 아니다.
정승화 인천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사회학 박사)은 “군 가산점 제도를 위헌으로 결정한 헌재 결정에 대해 학생들과 토론하고 논의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데도 전후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여성을 공격하고, 젠더 갈등의 구도로만 이 사안을 해석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교사 개인을 처벌하고 사안을 마무리 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교사의 발언을 검열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대처하기보다는 토론 문화가 자리 잡도록 교육 환경이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교사들의 고정관념과 확증편향을 해소하는 방향에서 교사들의 성인지 감수성 교육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 스쿨미투 대응팀 장하나 활동가는 “7년 전 스쿨미투와 동일하게 익명성이 보장되는 SNS를 통해서만 공론화가 이루어지는 점은 학생들이 학교나 교육청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어 “성인지 감수성 교육뿐 아니라 매년 진행되는 학교폭력 전수조사 항목에 교사의 언어폭력을 파악하는 문항을 포함하는 등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정기적인 전수조사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