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을 떠나면서 다짐한 것이 있었다. 돈을 쓰지 않는다. 밥과 잠자리는 겸손한 구걸로 얻는다. 조금이라도 거절하는 눈치를 보이면 두번 다시 요구하지 않는다. 차를 타지 않고 될 수 있는 한 걷는다. 그래서 방랑이 끝나는 날까지 나는 굶주림과 피로와 멸시와 모욕에 시달려야 했다. 어떻게 하면 이 고통을 이겨내느냐가 방랑 목적의 전부가 되어버릴 정도였다.』

젊은이들에게 「무전여행(無錢旅行)」은 자신과 세상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이다. 때로는 하루종일 걷기도 하고 때로는 종일 굶기도 하지만 그들은 그 힘든 여정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발견하고 사람과 세상을 보는 눈을 기른다.

목원대 신학과 교수를 정년퇴임한 송기득교수(66)가 35년전 서른 한살의 나이로 「거지처럼」 세상을 방랑했던 이야기를 회고해 펴낸 「사람살이가 구도의 방랑길입니다」(새날 刊)는 이런 값진 여행의 노정을 차분히 정리해낸 책이다.

그때 그는 철학을 전공했고 아내와 아이가 있는 그리 「젊지않은」 몸이었지만 아내에게 죄를 짓는것 같은 착찹한 가슴을 뒤로하고 53일간의 「가출」에 나섰다. 담요 한 장과 내복 한 벌, 냄비 하나, 밥그릇 한 개, 그리고 이발기구와 세면도구들이 짐의 전부. 이발기구는 여비를 보태겠다는 친구를 설득해 남대문 시장에서 사 얻은 것이었다.

그가 방랑을 시작하면서부터 부딛힌 것은 배고픔과 고단함, 그리고 사람들의 곱지않은 시선들이었다. 애초에 거지꼴로 나선 그를 경찰과 군인들이 간첩으로 오인했고 하루종일 산길을 걸어 물집이 터진 발은 그의 고단한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그 여정속에서 만날 수 있었던 뜻하지 않은 인정과 사랑들. 교회에서 @겨난 그를 구원해준 것은 천박한 술집이었으며 그의 말벗이 되어준 이들은 양공주와 결핵환자들이었다. 그래서 그는 방랑이 끝난후 다섯달만에 손수 황무지에 흙벽돌로 집을 짓고 결핵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나선다.

『나의 방랑은 1964년 그해 겨울에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뒤에도 형태만 다를뿐 방랑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평생 이어질 것입니다. 산다는 것 자체가 방랑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답게 사는 길을 찾는 것, 그것이 방랑의 뜻입니다』

아내와 아이를 두고 두달간의 방랑을 겪고 돌아온 그가 그로부터 서른여섯해가 지난 지금 얻어낸 결론은 「산다는 것 자체가 구도의 방랑길이며 힘겨웠던 젊은날의 여행은 이것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朴商日기자·psi2514@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