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동양적인 방법과 정신으로 세계와 심호흡한 고암 이응노(顧菴 李應魯·1904~1989)화백의 전시회가 수원에서 열린다. 오는 12일부터 17일까지 경기도문화예술회관 대전시실에서 열리는 「고암 이응노」展.
경인일보사와 경기문화재단이 주최하고 한국미술협회수원지부와 가나미술연구소가 주관한 이번 전시회는 고암의 예술세계와 면모를 생생히 살펴볼 수 있는 귀한 자리이다. 타계 10주기를 맞은 올해 서울에서는 「통일무」라는 제목으로 대규모 회고전이 열려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나 경기도에서 전시회를 갖기는 처음이다.
전시작은 고암이 1958년 프랑스로 건너간 이후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작품 80여점. 동양정신과 서구조형성이 어우러진 독특한 「문자추상」, 광주민주항쟁 이후 선보인 인간연작 「군상」 등 고암을 상징하는 작품에서부터 전통수묵화와 영모화(翎毛@) 등을 시대별 주제별로 전시해 작가의 조형세계를 재조명한다.
고암의 작품세계는 흔히 동도서기(東道西器) 도기합일(道器合一)로 설명된다. 동양의 정신과 서양의 방법을 융합한 그의 그림은 동양화의 요체인 「기운생동(氣韻生動)」이 충일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이 살아있고, 민족혼과 시대정신에 부응하면서 세계인 누구나 감흥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갖고 있다.
고암은 생전 『예술가의 사명은 새로운 가치의 창조에 있다』고 말했던 대로 일생에 걸쳐 도전을 감행했다. 수묵(水墨)으로 화업을 시작, 도불(渡佛)이전까지 전통 동양화법으로 반추상적인 사의적(寫意的) 표현에까지 나아갔다면 프랑스 정착 이후에는 파피에 콜레, 문자추상으로 유럽에서 독보적 위치를 굳혔다.
그러나 이에 머무르지 않고 광주민주항쟁 소식을 접한 80년대 고암은 수천,수만의 군중이 광장에서 움직이는 「군상(People)」시리즈를 내놓아 시대와 인간이 숨쉬는 새로운 세계로 이동한다. 국내에서는 「군상」을 광주와 학생데모, 더 나아가 민족통일의 염원을 담은 「통일무」로 받아들였고, 유럽에서는 반핵운동으로 파악했다. 고암의 민족혼이 국제성과 만나는 지점이 바로 「인간주의」임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동백림사건과 백건우·윤정희부부납치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으로 금기작가가 된 적도 있는 고암이지만 그의 예술은 스스로 언급한대로 「생에 대한 진실의 창조」였고 동과 서, 시대와 지역성을 뛰어넘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술평론가 윤범모씨(경원대교수)는 『고암은 평생 먹작업을 했지만 국제성과 현대성을 띠고 있다』며 『서구에서 연구되는 유일한 20세기 한국작가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타피스트리·나무·세라믹·펠트 등 다양한 소재의 작품과 병풍도 선보인다. 입장료 없음. (0331)258_5105
▲이응노의 생애
한평생 자기혁신을 시도했던 이응노의 일생은 국제적 성가에도 불구, 한국현대사의 질곡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것이었다.
1904년 충남 홍성에서 가난한 양반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23년 19세때 해강 김규진의 문하에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 이듬해 「청죽」으로 제3회 조선미술전에 입선해 화단에 입문했다. 35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화와 서양화풍을 익히고 10년만에 귀국해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쳤으며 홍익대와 서라벌예대 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53세의 늦은 나이에 프랑스로 건너가 정착한 뒤 종이콜라주와 문자추상 작업으로 추상표현주의가 득세하던 유럽화단에서 명성을 얻었다. 또 64년 파리에 한국화학교인 「동양미술학교」를 설립하고 동양미술의 이해와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67년 이른바 동베를린간첩단사건에 연루돼 2년반 동안 국내에서 옥고를 치렀으며 더욱이 77년 백건우·윤정희부부 납치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아 국내화단과 12년 동안 절연되는 비운을 겪었다.
이같은 시련속에서 83년에 프랑스에 귀화한 그는 87년 북한을 방문하고 그리던 아들을 만났으나 북한 예술가들의 작가정신 부재를 비판해 북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다.
89년 호암갤러리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때 귀국을 추진했으나 좌절됐으며 전시개막일(1월10일) 하루전날 심장마비로 사망, 끝내 조국땅을 밟지 못했다. 그는 예술가들의 박물관이라는 파리 「페르 라 세즈」묘지에서 영면하고 있다.
/柳周善기자·j@sun@kyeongin.com
고암 이응노展 오는12일 수원전시
입력 1999-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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