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5월이면 어린이 달을 겨냥한 공연들이 요란한 홍보와 함께 등장한다. 1년에 두어 번 있을까말까 한 범사회적 이슈에 편승하여 모처럼의 호기를 맞는 이즈음의 공연장에서 우리들이 으레 만나는 것은 가벼운 창작 뮤지컬이나 최근 한두 해 사이 부쩍 눈에 띄는 수입산 무언극 또는 번역극이다. 그런데 올해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는 뜻밖에도 피아노 연주회가 어린이 달 기획공연으로 무대에 올랐다. 한국 최고의 피아니스트라 평가받는 백혜선이 '엄마하고 나하고'라는 이름으로 독주회를 열었다. 13일 저녁 7시 대공연장에 오른 이 음악회는 인천&아츠의 시민문화 프로그램 일환으로 인천시가 유치한 행사이자 4월 29일 부산을 기점으로 여러 도시를 거쳐 일곱 번째 방문지에 온 피아니스트의 기획공연이었다.

 피아니스트는 모차르트 소나타 C장조 K.545를 치고 어린 청중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짧은 해설과 함께 ‘어린이용 레퍼토리’가 몇 곡 더 이어졌고 그림동화를 피아노로 풀었다는 뿔랑의 모음곡과 현악합주가 더해진 모차르트의 변주곡이 후반부를 채웠다. 형식으로만 보자면 80년대 후반부터 기획되기 시작한 이른바 ‘찾아가는 음악회’식의 연주회가 어린이용으로 하나 더 열렸다고 여기면 될 듯하다. 화려한 무대장치나 어릿광대 진행자는 따로 없었다. 2부에서 ‘아기 코끼리 바바’의 이야기 그림이 스크린 위로 뜨고 마지막 순서에 앞서 모차르트의 생일축하 파티가 잠시 연출된 것이 그나마 요즈음 어린이 대상 공연의 ‘트렌드’와 맞는다고 할 정도로 공연은 별 꾸밈없이 단출하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연주회는 아주 특별했다. 음악가에게 거는 사회의 일반적인 기대를 넘어 백혜선이 우리에게 보여준 새로운 능력 때문이었다. 쇼팽이나 멘델스존의 작품이 백혜선이 아니고는 결코 들려줄 수 없는 노래가 되어 울려 퍼진 것도 멋진 일이지만, 악곡으로 어린이들을 이끄는 해석과 말솜씨는 청중에 대한 그의 준비가 얼마나 진지한 것인지를 잘 드러내고 있었다. 딱딱한 음악 용어나 억지로 지어낸 표제적 줄거리로 악곡을 설명하며 왜곡된 감상을 유도하는 대신 그의 이야기들은 피아노를 배우며 어린 시절의 자신이 느꼈을 법한 즐거움을 꺼내 보이고 있었다. 작은 프레이즈 하나로 부터 시작된 상상, 그로 부터 꼬리를 무는 연상. 때문에 선율의 표현에 대한 궁리가 이어지고, 강약과 템포의 변화가 만드는 피아노의 흥미로운 세계가 좋아지는 경험이 음악회 내내 일어나고 있었다.

 아이들이 다룰만한 소품들을 적당히 엮거나 내실없는 전문성으로 허울좋은 행사를 치르는 일이 허다한 5월의 무대에서 이 날은 의외의 새 스타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아이들의 언어를 충분히 관찰하고 이해하는 엄마와 음악에서 기쁨을 만드는 대 피아니스트의 어린 시절 기억이 만나 ‘피아노 잘 치는 백혜선’이 아니라 우수한 음악 교안을 짜는 ‘백혜선 아줌마 선생님’이 어린이 음악회의 모범을 보이는 참이었다. /주성혜(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