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 너무 불쌍해요…. 우리에겐 갈 곳이 별로 없잖아요? 호프집에 간 아이들중엔 모범생이 더 많아요. 호프집에 갔다고 결코 탈선에 빠진 게 아닙니다.』
인현동 참사가 일어난 후 1일 등교한 인천시내 각급학교의 분위기는 침통하기만 했다. 아울러 학생들은 친구들 목숨을 앗아간 화재참사에 대해 한결같이 어른들의 무책임과 이기주의를 거세게 비난했다. 이들에게도 「할 말」은 무척 많았다. 화재참사를 계기로 10대들의 「이유있는 항변」을 들어 보았다.<편집자 註>
▲권형욱(17·계산공고 2년)= 먼저 친구들이 너무 많이 희생돼 마음이 아픕니다. 이번 참사 원인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10대를 위한 공간이 별로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큰 사건이 날 때 마다 어른들은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야단법석을 떨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달라진 게 하나도 없어요. 이번 인현동 화재사고를 계기로 청소년들이 마음놓고 드나들수 있는 우리들만의 공간을 마련해 주세요.
▲유현기(18·청학공고 2년)=청소년을 위한 문화공간이 인천에 별로 없기 때문에 비극이 일어났다. 서울엔 청소년을 위한 놀이공원이 각 구마다 여러개씩 조성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 우리에겐 기껏해야 월미도, 송도유원지가 전부다. 주말에 동인천, 주안, 제물포, 동암, 간석 등지에 나가보면 술집마다 미성년자들이 북적거린다. 신분증을 확인하는 집은 거의 없다. 불법이라도 돈만 벌면 된다는 그릇된 어른들의 생각이 청소년들을 비극으로 몰아넣었다고 본다.
▲손종혁(17·광성고 1년)= 어느 곳이든 화재나 안전에 대해 철저히 대책을 세워놓아야 하는 데도 어른들은 돈벌이에만 급급해 안전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있다. 업주들도 문제지만 행정기관에선 그런 것을 보고도 왜 가만히 있는 지 모르겠다. 참사가 난 호프집 일대만 해도 학생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 10여 군데에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정한 장소를 정해 청소년출입 전용업소로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허윤경(17·석정여고 2년)=이번 화재는 인천의 청소년들이 얼마나 취약한 여건에 놓여 있는 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판단된다. 10대들이 갈 수 있는 장소가 얼마나 되는 가? 가끔 문화예술회관서 공연을 볼 수 있는 것 외에는 문화활동 및 생활을 즐기고 가꿀 수 있는 장소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대학입시에 매달리게 하는 이 사회의 병리현상속에 청소년들은 숨쉴 곳이 없다. 이제는 정말 어른들이 10대들을 생각하는 교육과 정치를 해 주길 바란다.
▲이규진(인천여상 1년)=언니들이 한순간에 그런 참사를 당할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너무 슬프고 불쌍하다. 한편으론 어른들이 정말 밉다. 돈벌이에만 급급해 무조건 학생들을 조그만 공간에 밀어넣고 장사를 한 건 해도 너무했다. 물론 호프집에 갔다는 게 부끄럽게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10대들이 방과후 마땅히 쉴 공간이 없다는 데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건전한 놀이문화 공간이 하루빨리 마련됐으면 한다.
▲고미영(선화여상 2년)=도대체 출입문을 왜 막았는 지 모르겠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른다. 호프집 주인과 종업원은 무사하고 어떻게 우리 친구들만 피해를 입을 있는 가? 학생들에게도 일부 잘못이 있지만 어른들이 그렇게 청소년 안전에 무심했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병상에 누워있는 친구들이 하루빨리 완쾌되길 바란다.
▲변은미(인화여고 3년)=사회가 원망스럽다. 오죽하면 우리들이 호프집에 가겠는 가? 정말 청소년들이 숨쉬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 우리들은 학업과 입시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매우 지쳐 있다. 이런 청소년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어른들의 생각이 너무 아쉽게만 느껴진다. 사회 지도층에 계신 분들이 제발 한번이라도 속시원히 우리들의 얘기를 귀담아 들어봐 주었으면 좋겠다.
▲허찬(16·제물포고 1년)=사고가 일어나도록 방치한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규정대로 소방설비만 설치했어도 많은 학생들이 죽진 않았을 것이다. 공부 말고는 모두 하지 말라는 것만 있다. 운동시설도 부족하고 친구들과 앉아서 얘기할 만한 공간도 없다. 술을 마시는 학생들이 모두 비행청소년이라고 보는 어른들의 시각도 잘못됐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는 친구들중엔 성적이 좋은 아이들도 많다. 공부도 좋지만 친구관계나 이성관계도 중요하다고 본다. 청소년들의 생각과 문화에 대해 어른들이 더 깊이 이해를 해 주었으면 한다.
▲전지현(17·인명여고 2년)=학교축제 등 행사를 마치고 나면 친구들끼리 모여 마땅히 뒷풀이할 곳이 없다. 어른들은 항상 아이들 입장에서 모든 것을 수용할 것 처럼 얘기하지만 정작 지켜지는 것은 드물다. 이런 약속은 차라리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친구들과 휴식도 취하고, 대화도편집자>
학생들이 느끼는 인천화재참사
입력 1999-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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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1-02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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