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가 축 처진 실직자들에게 새 일터를 찾아주는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지요.”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경인지방노동청 경인고용안정센터 직업상담원 尹義植씨(32). 태어나서 자란 곳은 충북 청주지만 98년 4월 지금의 직업을 갖게 되면서 인천을 제 2의 고향으로 삼았다는 그는 실직자들의 정겨운 벗이다.

IMF 이후 대량실직사태가 닥치면서 인천에도 5곳의 고용안정센터와 인력은행이 설치됐다. 이들 공공구직기관의 직업상담원도 외환위기가 낳은 새로운 직업군의 하나인 셈. 우리 사회가 고실업시대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징표이기도 하다.

尹씨는 인천에서 둥지를 튼 후 지역경제의 취약성이 낳은 실직자를 접하면서 남다른 각오를 다졌다.

“쏟아지는 실직자를 보면서 취업알선이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길이 되겠다는 판단을 했지요. 구인자와 구직자를 이어주는 디딤돌 역할인데, 나름대로 참 신나고 보람된 일입니다.”

尹씨의 이력을 보면 왜 이런 생각을 갖게 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88학번인 그는 사회복지사로 강원도 속초종합사회복지관과 간성읍사무소, 인천장애인종합복지관 등지에서 소외된 이들을 돌봤다. 남에게 베풀고, 지친 자들이 기댈 수 있는 '언덕'으로서의 구실을 해야겠다는 속내를 읽을 수 있다.

짧은 기간이지만 구직창구에서 많은 실직자를 대하면서 모두에게 힘이 되지 못하는 한계를 절감하며 너무 안타까웠다는 게 尹씨의 얘기다.

“재작년만 해도 일자리는 10곳도 안되는데 하루에 제 앞에만 1백여명의 구직자들이 찾아와 북새통을 이루기 일쑤였어요. 저 자신도 힘들었지만 가장으로서 능력을 빼앗긴 이들의 좌절을 생각하면…. 한번은 나이가 많으신 할아버지께서 경비원자리를 찾길래 어렵사리 구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한달 쯤 지나 고맙다며 찾아오셨을 땐 큰 보람을 느꼈지요. 반면 남편에겐 경제능력이 없고, 아이는 가르쳐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며 발을 구르는 아주머니를 돕지 못했을 땐 절로 힘이 빠지더군요.”

다른 지방보다 빠르게 정보를 접할 수 있고, 기업의 인사, 노동관련법규 등 낯선 지식도 습득케 해준 인천이 고맙다는 尹씨. 성실함을 바탕으로 지난해에는 국무총리 표창을 받기도 했다. 부하들을 꼼꼼하게 관리하는 金歲漢센터장(58)도 그의 일처리를 칭찬할 정도다.

직업능력개발, 실업급여업무 등을 거친 그는 “산재보험업무도 배우고 싶다”며 “젊으니까 더 갈고 닦아서 인천지역 실업안전망이 안전하게 구축되는데 작은 힘이 되겠다”는 다짐을 빼놓지 않았다. /李旻鍾기자·minjong@kyeongin.com-사진설명:실직자들에게 일터를 알선해 주는 일이 사회에 대한 봉사라고 믿는 직업상담원 尹義植씨. '고실업사회를 헤쳐가는 조타수'가 되고 싶어 한다. /林淳錫기자·seo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