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여명의 사상자를 낸 인현동 화재 참사 이후 “사고재발 방지를 위해선 무엇보다 청소년 유해환경 업소에 대한 행정·사법 당국의 단속 강화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에따라 정부는 강력한 지도·단속 방침을 발표했으나 참사 1년이 지나면서 다시 형식에 그치고 있다.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 행태'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본보 취재진이 '인현동 화재참사…' 시리즈를 보도한 이후 일선 구청과 경찰은 부랴부랴 계획을 세워 지난 12일 오후 9시~자정까지 3시간동안 청소년 유해업소에 대한 합동단속에 나섰다.

 이날 부평구청 문화공보실 청소년팀과 시청 공무원, 경찰 등 12명이 합동단속을 벌인 동암역 일대. 단속결과 청소년 주류제공업소 3곳, 청소년 고용업소 1곳 등 4개 업소 적발에 그쳤다. “경기침체로 가뜩이나 장사가 안되는 판에 이렇게 합동단속을 실시해 애를 먹이는 이유가 뭐냐”며 업주들이 항의하는 바람에 단속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한 단속 공무원은 “이번 단속이 계획적으로 이뤄진게 아니라 여론을 의식한 상부의 갑작스런 지시로 실시된 만큼 형식적일 수밖에 없다”며 “평상시엔 제대로 단속에 나서지 않다가 갑자기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청소년 유해업소 단속이 얼마나 겉치레로 일관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인현동 참사 이후 경찰과 자치단체가 “분기별로 지역을 바꿔 교차단속을 벌이겠다”는 방침도 흐지부지된 상태. 교차단속은 공무원과 관내 유흥업소 업주와의 유착관계를 청산하고, 단속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해 불법행위를 방치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의지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단속 현황을 보면 '청소년 고객'들이 많은 주말엔 거의 단속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실효를 거두지 못할 게 뻔한 일. 더욱이 평일 교차단속 관행은 오히려 '주말 단속공백'을 가져온다는 우려마저 낳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다 행정 및 사법기관의 단속인력을 살펴보면 과연 단속의지가 있는 것인지, '원론적인 문제'에서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다. 수백 곳에 달하는 관내 청소년 유해업소를 감시하는데 일선 기초자치단체 단속요원은 평균 3~4명에 불과하기 때문. 남구는 단 1명이 단속업무를 맡고 있는 형편이다.

 구청의 한 청소년업무 담당공무원은 “유흥업소 교차단속은 원래 분기별로 실시하기로 되어 있지만 올들어 겨우 한차례 단속을 벌였다”면서 “교차단속을 위해선 각 기초자치단체가 서로 같은 수의 인력을 교환, 배치해야 하는데 워낙 인력이 모자라 유명무실한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경찰관계자도 “정기적인 교차단속 외엔 평상시 업소단속을 거의 못한다”며 “다른 업무가 많아 청소년 유해업소 단속업무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상태”라고 시인했다.

 '제2의 호프집 참사'는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행정기관의 노력과 의지는 사고예방이란 측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행정을 비롯 각급 단속기관들은 이처럼 인력부족을 내세우면서 의지마저 보이지 않고 있다는게 취재진의 확인 결과다. '사고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현장'들을 꼼꼼하게 다시 짚어봐야 한다는 여론이 높게 일고 있다.

/李喜東·車埈昊기자·dhle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