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83년 인천의 개항은 외세에 의해 이뤄졌다. 제국주의의 발톱을 세운 일본의 강제에 못이겨 봉건적 질서를 마지못해 청산하고 본격적인 자본주의에 편입된 것이다. 이후 일본의 식민지 침탈은 인천을 통해 이뤄졌고 외세 문화가 유입되면서 자연스럽게 항구 도시의 독특한 문화적 특성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특히 일제에 저항하는 민족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인천은 반외세, 반착취에 대한 열기가 다른 어느 도시보다도 활발했다.
그러나 해방이후 6·25전쟁은 인천의 역사·문화적 토양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이념을 지키기는 했지만 그동안 독특하게 형성돼 왔던 인천의 역사·문화가 포화로 산산조각나 버린 것이다.
개발독재는 더욱 인천을 삭막하고 척박한 도시로 만들었다. 수출 드라이브를 최우선으로 하던 군사독재 정권에 의해 인천만의 독특한 문화양식은 거부되고 오직 경제성장만이 신성시됐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최근까지 인천은 자신만의 독특한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 '뜨내기 도시'라고 평가 절하되고 있는게 현실. 또 상당수 시민들은 정체성 없는 껍데기 도시로 인천을 평가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인천은 남·북한간 냉전이 허물어지고 국제공항이 영종도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인천이 동아시아, 나아가서는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근·현대사를 종합해 보면 인천은 누구나 받아들이는 개방적인 독특한 역사·문화의 특징을 갖고 있다.
인천만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은 시민들의 공동체적 삶과 국제화, 세계화를 위한 필연적인 전제조건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인천지역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담론들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현상은 바람직하다.
▲인천 역사·문화 정체성에 대한 담론=근·현대사 질곡의 중심에 서있는 인천에 대한 평가는 양극을 치닫고 있는게 현실이다.
우선 인천의 개항이 외세에 의해 강제되다 보니 한쪽에서는 개항의 의미만을 지나치게 부각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역사의 수난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만 강조된다. 최근 개항 100주년 기념탑의 이전을 둘러싸고 빚어지는 극단적인 분열양상이 이점을 반영하고 있다.
새얼문화재단 '황해문화' 김명인 편집주간은 “인천은 근·현대사의 격동기 최전선에 서 있었던 만큼 역설적으로 정체성을 끊임없이 해체시키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며 “항상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상황에서 인천지역민들이 자기공동체를 일구기 위한 노력들이 빈약했던 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인하대 국문학과 최원식 교수는 “인천의 근·현대사에서 정체성에 대한 논의는 너무나 극단적이어서 바람직하지 않다”며 “지역의 발전을 위해선 양단을 모두 함축하는 중심논의가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인천 역사·문화의 미래=인천지역 문제를 관통하고 있는 전문가들은 인천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다소 낙관적인 평가를 내린다.
이들은 모두 인천 시민들의 삶의 질을 한단계 높이기 위해선 개방적 태생을 전제로 정체성을 가꾸어 가는 원칙적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인천은 항구라는 특성 때문에 과거 중국상해와 하와이 이민, 6·25전쟁이후 남·북단절등 민족적 이산의 중심에 서 있었다.
비극을 딛고 인천은 이제 세계적 교통과 교역의 중심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런 조건들은 인천이 이제 더이상 대한민국의 2류도시가 아니라 세계의 중심도시로 비약할 충분한 자양분이다.
황해문화 김주간은 “인천은 이제 동아시아의 중심은 물론 남·북한 이동의 견인차로 역할할 것”이라며 “최근 들어서 올바른 지역 정체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만큼 전망은 낙관적이다”고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또 “정체성을 올바로 견인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차근차근 시민들의 동의를 끌어내 문화적 토양을 형성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현재 추진되고 있는 인천문화재단의 설립을 통해 문화산업이 시민 정서에 뿌리깊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하대 최원식교수는 “개항으로 시작되는 인천의 비극적인 근·현대사는 어찌보면 필연적인 역사과정으로 볼 수있다”며 “그러나 인천은 이제 동아시아, 세계의 중심으로 도약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천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데 망설일 수 없다”며 “활발한 논의를 통해 인천의 아젠다(Agenda)를 설정한뒤 시민들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