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경(67·남동구 간석3동)씨는 월드컵에 관한 한 인천의 '얼굴'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관문인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서, 그리고 인천 월드컵의 상징인 문학경기장 월드컵 홍보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지난 10일 오후 인천문학경기장 월드컵 홍보관에서 이씨를 만났다. 머리칼이 유난히 검은데다 무척 정정해 보여 대뜸 “머리칼을 염색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아직 한번도 염색한 적이 없다”며 건강함을 체질 덕분으로 돌린다. '퇴직한 뒤엔 쉬 늙는다'는 말도 사람 나름인 듯싶다.
퇴직 4년째를 맞는 이씨는 매주 월·화·수요일 오전 7시 20분이면 어김없이 공항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집 근처 간석오거리에서 공항까지 1시간 30분쯤 걸린다. 인천국제공항 3층 출국장이 그가 일하는 곳. 자원봉사자임을 알리는 옷차림을 하고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는 외국인들에게 먼저 다가가 길안내를 하고, 궁금해 하는 사항들을 가르쳐 주는 게 그의 일이다. 공항구경을 나온 국내 단체 관광객을 안내하는 일도 맡는다.
'근무시간'인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앉아 있을 짬이 없다. 공항이 문을 연 지난 해 3월 29일부터 계속하고 있는 일이다. 최근엔 공항을 찾는 국내 단체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 그만큼 이씨가 해야 할 일도 많아진 셈이다.
“인천공항을 찾는 일본이나 중국 등 아시아권 관광객들은 우리 공항의 첨단시설과 엄청난 규모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인천에 이런 공항이 있다는 게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라요. 특히 우리세대에선 다시 볼 수 없는 월드컵 경기가 인천에서 열린다고 생각하니 나이 든 저로서도 힘이 저절로 솟아요.”
지난 1년간 꼬박 공항에서 외국인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전달하려고 힘써 온 그는 지난 1월부턴 월드컵 홍보에 발벗고 나섰다. 매주 일요일마다 문학경기장 1층 월드컵 홍보관에서 영어 통역을 맡고 있는 것이다.
주중 3일은 공항 자원봉사자로, 일요일 하루는 월드컵 경기장 자원봉사자로, 1주일에 4일간 자원봉사활동을 벌이는 그는 “하루 정도는 더 자원봉사를 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며 웃는다.
34년간 미8군 군무원으로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운 영어실력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는 그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다. 인천 지리를 모르는 한 여성을 서울에서 연수구까지 바래다 준 적도 있다. 얼마나 고마웠던지 강원도에 사는 그 여성은 나중에 감사의 표시로 감자와 배추 등속을 택배로 보냈다고 한다.
“사람을 대하는 자원봉사는 어느 정도 성격을 타고나야 할 것 같습니다. 웃음으로 사람을 대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편히 집에서 쉬지 뭐하러 사서 고생하냐는 친구들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원봉사활동이 체질에 맞는다는 그는 “월드컵의 성공으로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삼았으면 한다”며 “요즘 출국장에 나가보면 외국에 나가는 관광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만큼 붐비고 있는데, 너무 빨리 IMF체제와 같은 어려운 시절을 잊어버리는 게 아니냐”고 안타까워했다.
월드컵 홍보관을 나오면서 일 욕심 많은 그의 건강 비결은 늘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봉사를 하는 데 있다는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