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시장을 찾아주는 시민들이 있어 이 만큼 먹고 살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지역사회에 되갚아야죠….”
지난 97년 결성한 인천종합어시장 상인부녀회(회장·김순례·55)는 어시장에서 꽁치 팔고, 새우젓 담가 파는 195명의 여성 상인들로 이뤄진 그야말로 순수한 '아줌마' 봉사모임이다.
손님들과 생선값을 두고 실랑이를 벌일 때면 “야박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는 직업인지라 결성 초기엔 대부분 '얼마나 모이겠나'하는 의구심을 갖고 시작했지만 뜻밖에도 220여명이나 소매를 걷어 붙이고 나섰다. 어시장 아줌마들의 가슴 한편엔 저마다 배고프고 고단했던 삶이 있었던 것이다.
상인부녀회는 대상을 정해놓고 봉사활동을 하지 않는다. 햇볕이 좀처럼 들지 않는 그늘진 곳에서 살아가며 사정이 딱한 이웃들을 보면 그 때마다 지체없이 달려간다.
또 지역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대형 복지시설보다는 교통편이 마땅치 않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섬지역을 주로 찾는다. 장봉도의 장애인수용시설인 '혜림원'과 영종도의 '영종보육원' 등이 이들의 손길이 닿고 있는 곳이다.
연수구 '영락원'과 동구 '보라매보육원'도 자주 찾아 가는데, 처음엔 주로 난방비를 지원하다 좀더 의미있는 선물을 지원하기 위해 수용인원에 맞는 두툼한 솜이불과 내복, 셔츠와 트레이닝복, 양말 등으로 바꿨다. 물론 어시장에서 취급하는 병어, 동태, 가자미 등 수백종의 수산물도 복지시설에 반찬거리로 제공하고 있다.
지난 98년부터 매년 어버이날을 즈음해 벌이는 노인잔치엔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서울과 경기지역 노인들도 어시장을 찾아 1천여명이 북적인다.
노인들이 좋아하는 국악인을 초청해 공연을 벌이는가 하면 회원들이 손수 장만한 맛깔스런 수산물 요리를 놓칠 수 없는가 보다. 잔치가 끝나고 어른들이 빈손으로 돌아가면 허전해 할까봐 수건을 하나씩 포장해 드리기도 하고 70세가 넘은 고령의 노인들에겐 돋보기를 장만해 주는 세심함도 잊지 않는다.
또 2년 전부터는 인근 연안초등학교 결식아동과 소년·소녀가장에게도 쌀과 부식, 후원금을 지원한다.
이같은 지원활동에 사용되는 기금은 전액 부녀회에서 벌이는 수익사업으로 충당한다. 여름철엔 어시장에서 상인들을 상대로 수박 등 과일을 팔고, 겨울철엔 국수장사 등을 해서 기금을 마련한다. 상인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오징어, 꽁치 등 각종 수산물을 몇상자씩 자발적으로 내놓는다.
그러나 현금은 지원하지 않는다. 지난 99년 어렵게 모은 돈을 모 장애인보호시설 건축기금으로 전달했는데, 실무자가 어시장에 나타나 고가의 해외 유명의류를 입고 거들먹거리던 모습을 보고 크게 상심했기 때문이다.
봉사활동을 벌이며 겪었던 가슴아픈 기억은 또 있다.
지난 98년 수해 때 이재민을 돕기 위해 200여포의 세제와 고무장갑을 트럭에 잔뜩 싣고 부녀회원들이 한 자치단체를 방문했는데 “의연금이나 낼 것이지, 물품은 뭐하러 갖고 왔냐”며 귀찮다는 태도를 보인 이후 관공서를 통한 지원도 아예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물질적 지원만 하는 게 아니다. 어시장이 연중무휴로 운영돼 가게문을 닫을 수 없기 때문에 회원들이 조를 편성, 매주 수요일 생선을 들고 중구 북성동 무료급식소를 찾아가 노인들에게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부녀회의 선행이 조금씩 알려지자 도움을 요청하는 손길이 잇따르고 있지만 한번도 거절하지 못했다. 도움을 뿌리쳤을 때 그들이 받을 마음의 상처를 회원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매월 1만원씩 회원들이 내는 회비의 적립액이 상당하다는 귀띔을 받고 용도를 묻자 김회장과 총무 최순실(49)씨는 약속이라도 한듯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회비요? 장애인들이 오순도순 모여 살 수 있는 복지시설을 멋지게 지어 국가에 기부할 겁니다. 합동결혼식도 올릴 수 있게 될 거예요….”
[여성모임을 찾아서 - 인천 어시장 상인부녀회] 딱한이웃 돕는게 보람
입력 2002-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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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2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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