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우리나라에서 성냥 제조업의 시초다. 인천에 성냥공장이 처음 세워진 것은 개항 3년째인 1886년이다. 이들 성냥공장에서 생산된 제품 중 일부는 중국에까지 수출됐다.
 
하지만 일본제 성냥에 밀려 생산이 중단되는 위기도 있었다. 성냥이 인천공업을 주도한 시기는 1917년부터다. 현재 동구 금곡동 일대에 2천여평의 부지 '조선인촌회사(朝鮮燐寸會社)'가 설립되어 남녀 직공 500여명이 연간 7만 상자의 성냥을 생산해 국내 최대를 자랑했다.
 
상표명은 '우록표', '쌍원표' 등이 대표적이다. 당시 국내 성냥소비량의 20%를 담당했다고 하니 가히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간다.
 
특히 지방이나 서울 학생들이 인천성냥공장에 수학여행을 다녀갈 정도였다고 하니 국내 최대임은 틀림 없었나 보다. 이 때는 기계화가 잘 이뤄지지 않아 성냥개비에 인을 붙이거나 성냥개비를 성냥에 넣는 작업을 사람이 직접 손으로 했다.
 
성냥공장이 번창하면서 주변 금곡동과 송림동 지역의 500여 가구가 성냥갑을 만들어 공장에 납품하는 등 성냥갑 만드는 일이 인천 지역 최고의 가내수공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어떤 집은 온 식구가 성냥갑에 매달려 생계를 꾸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만하면 '성냥=인천'이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한다.
 
해방 후 지포(Zippo)라이터가 유행을 하면서 60년대 조선인촌회사는 문을 닫았다. 70년대 중반까지 대한성냥, 유엔표 팔각성냥, 기린표 통성냥, 비사표 갑성냥 등이 그 명맥을 이어왔지만 일회용 라이터가 생산되면서부터 그나마 성냥의 불꽃은 거의 사그러졌다.
 
지금 인천은 성냥공장 대신 일회용 라이터 생산공장이 대신 불꽃을 지켜가고 있다. 인천은 라이터 산업을 지역 특화산업으로 선정, 전략산업으로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값싼 중국산에 밀려 경쟁력을 잃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자료제공=인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