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립 인천대학교의 국립화가 현실화하고 있다. 인천대의 국립화에 부정적이던 교육부가 입장을 바꾼 것이다.

최근 인천전문대와의 교지조정에 합의, 송도국제도시로의 캠퍼스 이전사업에도 가속도가 붙은 인천대의 역사는 말 그대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인천대의 과거를 말하면서 선인학원을 빼 놓을 수 없다. 선인학원은 1980년대 14개의 교육기관을 소유해 국내 최대의 사학재단으로 꼽혔다. 그러나 설립자 비리, 계속된 학내분규 등의 오명이 뒤따랐다. 선인학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의식해 설립자 백인엽씨는 81년 국가 헌납의사를 밝혔으나 13년이 지난 1994년 3월에 가서야 시립화를 이룰 수 있었다.

1979년 인천공과대학(5개학과)으로 문을 연 인천대는 1988년 10월에 종합대학으로 승격된다. 이 때 인문대학, 자연과학대학, 사회과학대학, 공과대학, 경상대학, 예체능대학 등 6개의 단과대학 설치승인을 받았다. 1994년 3월 시립 인천대학교로 바뀐 뒤에도 정상화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선인학원 시립화 과정에서 집단으로 해직된 교수·교직원들이 소송을 낸 것이다. 이 문제는 90년대 후반까지 법정을 오갔다. 1997년 10월 대법원은 인천대학과 인천전문대 시립화 과정에서 해임된 교수·교직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시가 무리하게 권한을 남용했다는 것이다. 이런 험난한 과정을 거친 인천대는 시립화 10년이 지나면서 지역의 대표대학으로서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재는 9개 단과대학, 7개 계열, 6개 학부, 1개 학과에 입학정원 1천700명의 대학으로 성장한 것이다.
인천대는 결국 설립 15년 만에 시립대가 됐고, 시립대 10년 만에 다시 국립대로 이름을 바꿔달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인천대는 지난 2003년 송도신캠퍼스 조성계획을 확정했다. 송도국제도시 15만6천여 평의 부지로 옮긴다는 것이다. 새 캠퍼스로 옮기기로 확정한 인천대는 올 2월부터 국립화를 추진해 왔다. 동북아 국제도시에 걸맞는 교육여건을 조성해 열악한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경제자유구역 내 첨단 산학연 클러스터를 구축, 우수한 전문인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범시민추진협의회를 꾸려 국립화에 매진해 왔고, 지난 4월엔 보름여 만에 국립화를 염원하는 130만명의 시민들로부터 서명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인천대는 국립화가 이뤄지면 인천을 상징하는 대학으로서의 역할과 위상재정립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 학문분야 특성화를 추진하고, 시대 변화와 발전을 선도하는 대학으로 성장한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또한 국립대 전환을 통해 많은 시민에게 국립대 진학기회를 주고, 성공적인 경제자유구역 건설을 위한 국제적인 산학연 구축 시스템도 갖출 것이란 목표도 세워 놓고 있다.
인천대의 국립화가 가시권에 들어서자 대학 측은 환영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