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타(丸太). 2차대전 중 일본 관동군의 731부대에서 생체실험에 희생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외면당한 채 단지 실험대상에 불과하다 하여 ‘껍질벗긴 통나무’란 의미로 이렇게 지칭됐다. 중국 하얼빈시 인근에 주둔했던 731부대는 살아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자행하고, 중국의 저난성 등 6개지역에 페스트균 등을 살포해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악명높은 세균전부대다. 이 부대에선 ‘밀폐된 방안의 공기를 서서히 빼면서 인체 파괴상황 지켜보기’ 등 갖가지 생체실험이 거리낌없이 자행됐었다. 1938~1945년까지 7년간 이렇게 희생된 조선인 중국인 러시아인이 자그마치 30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그 만행의 진상은 종전 후에도 30여년간 숨겨져오다 지난 1982년에야 비로소 폭로됐다. 종전 당시 전승국 미국이 생체실험 자료를 넘겨받는 조건으로 죄상을 덮어두었기 때문이라 한다.
진상이 드러나자 온 세계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도대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잔학성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인가, 많은 이들이 한탄하며 치를 떨었다. 이들의 죄상을 낱낱이 폭로하고 고발하는 한편, 다시는 이런 참상이 없도록 제재장치 강구에 심혈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런데….
‘미국의 한 유전학자가 아마존의 야노마니 인디언들에게 홍역을 감염시켜 수백명을 죽게했다.’ 며칠 전 영국의 BBC 방송이 저널리스트 패트릭 티어니의 책 ‘엘도라도의 암흑’을 인용, 보도한 내용이다. 이 책에 의하면 금년 초에 사망한 유전학자 제임스 닐이 1980년대 중반 ‘원시사회에서의 적자생존’을 알아보는 실험으로 홍역 백신을 인디언들에게 주사했다고 한다. 게다가 닐은 그의 연구진에게 앓아 죽어가는 원주민들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하도록 지시했다고도 한다. 그것도 미원자력위원회의 자금지원을 받으면서. 사실여부야 좀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현대문명의 야수성에 정말 몸서리가 쳐진다. 혹여 인간게놈지도라는 것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 건 아닐런지.
생체실험
입력 2000-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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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9-27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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