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4년 일본은 미국 군함의 위세에 눌려 강제 개항을 당했지만, 그후로
는 오히려 이를 자발적 적극적인 발전의 기회로 삼는다. 미국과 화친조약
을 맺은 이래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서양 제국과 차례로 통상조약을 맺었
고,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라는 급격한 근대화 과정을 밟아 일약 제국주
의 열강의 하나로 발돋움한 것이다. 이렇게 기세를 키워온 일본은 그 힘을
바탕으로 이웃 조선을 손아귀에 넣었으며 중국 등 아시아를 노략질 했는가
하면, 끝내는 미국에 까지 싸움을 걸기에 이르렀었다.
비슷한 시기 조선은 문을 꼭꼭 걸어 잠근채 오로지 청나라에만 모든 일을
의지하려 했다. 1832년 영국상선 암허스트호가 정식으로 문호개방과 교역
을 요구한 이래, 1846년 프랑스의 통상요구, 1864년 이후 러시아의 통상요
구 등이 잇따랐지만, 당시 조선의 대외정책은 수교와 통상을 거부함으로써
일체의 접촉을 피하는 것이었다. 특히 청나라가 아편전쟁으로 수도까지 함
락되는 것을 보고는 서양세력과는 아예 접촉을 하지 않는 것만이 상책이라
여겼던 것이다. 뒤늦게 개방의 필요성을 느꼈을 때엔 이미 ‘죽은 말 때리
는 신세’가 돼 있었고, 결국은 아무런 힘도 키우지 못한채 일제의 식민지
로 전락하고 만다. 어쩌다 시기를 놓쳐버린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던 것
이다.
배아복제를 엄격히 제한하는 생명윤리자문위원회 시안이 나오자 생명공학계
의 반발이 좀처럼 그치지 않고 있다. 학회 전문가 등이 대책위원회를 추진
하는가 하면, 며칠 전엔 국회와 관련 정부부처 등에 건의문을 보내기도 했
다. 이들은 줄기세포 연구 등이 원천봉쇄 됨으로써 장기가 부족해 생명을
잃어야 하는 난치병 환자들의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갔다며 한탄한다. 특히
이렇게 생명공학 연구를 막는 사이 선진국들은 다투어 핵심기술 개발에 박
차를 가할 것인만큼, 장차 이분야에서 또 다시 그들의 기술에 예속되는 결
과를 빚게되지 않을까 걱정들이 크다. 생명윤리와 생명공학의 경계를 딱잡
아 정하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혹여라도 또 하나의 쇄국을 떠올
린다면 지나친 노파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