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원대의 은괴를 실은채 인천 앞바다에서 침몰한 청나라의 고승호로 추
정되는 선박에서 최근 길이 120㎝의 소총 3정, 동전, 도자기등 유물 10여점
을 발굴했다고 한다. 발굴팀은 해저에서 침몰한 선체를 발견했고 관계기관
에서도 이의 확인작업을 벌이고 있어 진짜 고승호인지는 좀 더 시간이 걸
릴 것으로 보인다. 만일 고승호임이 확인된다면 은괴등 유물의 보물적인 가
치를 떠나 새삼 청일전쟁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계기가 될 것으
로 생각된다.
1876년(고종13년) 일본은 조선과 강화도 조약을 체결, 조선에 진출한다. 이
로써 조선반도는 청나라의 식민지적 지배와 함께 청일 양국의 세력 대결장
으로 변한다. 그후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거치는 동안 왕조의 압제까지 심
해 백성들의 생활은 더욱 피폐해진다. 이러한때 농민들과 동학교도들이 이
에 항거해서 나선 것이 동학혁명이다.
조선왕조는 동학혁명 진압을 위해 청나라에 원병을 요청하고 일본은 자국
민 보호를 구실로 출병, 청의 철수를 요구한다. 청이 이러한 일본의 요구
를 거절하자 일본은 1894년 7월 25일 풍도 앞바다에서 청국 군함에 포격을
개시함으로써 청일 전쟁의 막이 오른다. 약 9개월에 걸친 육해전 결과 일본
은 대승을 거두고 조선 반도는 완전히 일본의 영향력 하에 들어간다. 이러
한 상황에서 고승호는 개전초기 주한 청나라 군대에 군수물자를 싣고 가던
중 일본군의 포격을 받고 침몰한 것이다. 때문에 우리에게 고승호와 인근
의 섬 풍도 및 그 해역은 비운의 역사현장이자 유물인 것이다.
풍도(豊島)는 가을에 단풍이 절경이어서 단풍섬이라 불리기도 했고 그래서
조선시대 영조~순조때는 풍도(楓島)라 칭했다. 지금은 많은 낚시인들과 수
석(壽石)인들이 찾고 있으나 아직 빼어난 자연경관은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
다. 경기도는 마침 이러한 풍도에 대해 지난 98년부터 2007년까지 10개년
종합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가지 조언한다면 이러한 종합개발사업에
풍도와 그 주변해역이 역사를 되돌아 볼수 있는 교육현장이 되도록 배려해
야 할 줄로 안다. <成定洪(논설위원)>成定洪(논설위원)>
고승호와 풍도
입력 2001-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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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0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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