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이런 생각에 잠기는 지식인도 많을 듯싶다.
 그 첫 번째가 '아노미 사회'다. 프랑스어 'anomie'는 인간의 행위를 규제
하는 사회적인 공통의 가치나 도덕 기준을 잃은 혼돈 상태를 뜻한다. 즉 무
질서, 무정부 상태의 아나키(anarchy)와 비슷한 말이다. 가치관의 혼란과
사회 규범이 무너져내리는 그 아노미 이론을 학문적으로 전개한 사람은 프
랑스의 에밀 뒤르켐이고 정리한 사람은 미국의 로버트 킹 머튼이다. '아노
미'란 또 불안, 자기 상실감, 무력감 등 현실 부적응 현상을 가리키는 심리
학 용어이기도 하다. 한데 흥미로운 것은 바람에 날릴 것 같은 가볍고도 불
규칙한 원형의 '가랑잎조개'를 바로 불어에서는 '아노미'라고 한다는 점이
다.
 두 번째 생각은 무대 뒤의 인형극 조종자인 와이어풀러가 그 끈을 놓치
는 바람에, 그리고 모형 비행기나 자동차 조종자가 리모콘(리모트 콘트롤)
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한꺼번에 뒤얽혀 충돌하는 인형들과 비행기, 자동차
들이고 세 번째 상념은 역사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이른바 '역사의 종말
론'이다. '지구상에는 역사적으로 많은 사회적인 실험이 있었지만 실패했
다. 나치즘과 파시즘이 몰락했고 사회주의가 붕괴했다. 이제 지구상에 남
은 유일한 대안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결합한 형태이며 이런 사회체
제는 세계화와 함께 계속될 것이므로 역사는 끝났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라는 마지막 사회체제보다도 우월한 체제는 이 지
구상에 없는 것인가. 다시 말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결점을 보완하고 한
발 또는 몇 스텝 발전시킨 보다 이상적인 구원(久遠)의 사회 체제는 불가능
한 것인가. 대책 없는 가뭄에다 비행기는 안뜨고 도로는 막히고 급한 병이
생겨도 병원도 못가는 어제 오늘의 우리 세태가 너무나 답답하다. 일생일대
의 중요한 약속과 회의, 상담 또는 시험 등을 제삼자의 파업과 시위로 망쳐
버린 손해나 병원에 못가 죽는 사람 등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고 국가적
인, 대외적인 손해는 또 얼마나 클 것인가. <吳東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