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석학 이수광이 1614년에 쓴 ‘지봉유설(芝峰類設)’에는 담배
에 대해 이렇게 쓰여 있다고 한다. '담배는 잎을 따서 폭건하여 불을 붙이
어 피운다. …가장 능히 담(痰)과 하습(下濕)을 제거하며 또한 능히 술을
깨게 한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를 심어 그 방법을 씀으로써 매우 효과
가 있다.' 이렇듯 담배는 우리 나라에 처음 들어왔을 때만 해도 건강을 해
치기는 커녕 되레 의약적 효능이 뛰어난 풀로 여겨졌었다. 그래서 사람들
은 횟배를 앓을 때 담배를 피워 진통시키려 했고, 치통이 있을 땐 담배연기
를 입안에 품어 통증을 가라앉히려고도 했다. 또 곤충에 물렸을 땐 그 부위
에 담배를 피운 후의 침을 바르고, 상처의 지혈 또는 화농방지제, 담 치료
제 등으로 이용하였다.
 물론 당시에도 담배의 폐해를 진작부터 알고 경계한 글들이 있기는 있었
다. 일예로 1638년의 조선왕조 실록엔 '오래 피우면 가끔 간의 기운을 손상
시켜 눈을 어둡게 한다. 오래 피운 자가 유해무익한 것을 알고 끊으려 해
도 끝내 끊지 못하니 세상에서 요망한 풀이라 일컬었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글들이 두루 읽히고 알려지지는 못했다.
 현대 문명세계에서 담배를 유익하다고 여기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흡연
이 폐암 폐기종 지주막하출혈(蜘蛛膜下出血) 등 무서운 질병을 유발한다는
것쯤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서 미국 등 서구지역은 물론이고 우
리 나라에서도 흡연 피해를 배상하라는 배상청구 소송이 심심찮게 제기되
고 있기도 하다. 특히 미국의 경우는 담배를 아예 마약수준의 건강유해물
로 규정, 흡연행위를 가혹하리만큼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미국이 한국에 대해선 자기네 담배를 많이 소비해야 한다며 갖은 압
력을 다 가하고 있다. 얼마 전에도 우리 정부가 수입담배에 40%의 관세를
부과하려 하자 압력을 넣어 10%로 대폭 낮추게 했다고 한다. 미국의 몰염치
도 밉살스럽지만, 이를 물리칠 수 없는 우리 처지가 더 부아를 돋운다. 오
죽했으면 한국도 아닌 미국의 금연단체들이 다 분개하고 있을까. <박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