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가뭄과 장마, 그리고 찜통더위로 이어지는가 싶더니 오늘이 벌써 가
을의 문턱이라는 입추(立秋)다. 찌는듯한 더위로 고속도로는 아직껏 피서객
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이달말 까지는 때때로 폭우가 예상된다는 일
기예보도 있다. 그러나 절기로 말하면 오늘부터 입동(立冬)까지 석달동안
이 가을이다. 아직 더위는 계속되고 있으나 새벽공기는 한풀 꺾인 듯 하다.
농가에서는 지금부터가 더 바빠진다. 비발디는 그의 역작 사계 가운데 제3
곡 가을에서 수확을 기뻐하는 농부들의 모습, 아름다운 전원서정, 겨울에
대비한 농부들의 사냥장면등 바쁜 농촌가을의 풍경을 그렸다. 우리나라의
정학유(鄭學遊)도 농가 월령가에서 '… 농부들아 우리일 거의로다… 꼴 거
두어 김매기 벼포기에 피 고르기 낫 버려 두렁 깎기 선산에 벌초하기 거름
풀 많이 베어 더미 지어 모아놓고…"라고 노래해 한도 끝도 없이 일이 많
은 가을 농부들을 격려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가을이라 하면 역시 낙엽과 고독, 외로움, 사랑, 그리움
의 계절이다. 지난해 상영된 조안첸 감독의 영화 '뉴욕의 가을 (Autumn in
NewYork)"은 식당경영자인 50대 중년의 윌킨(리차드 기어 역)이 청순한 20
대 여성 샤롯 필딩(위노나 라이더 역)에게 생애 처음으로 느끼는 참 사랑
을 그린 작품이다. 이들의 애틋한 사랑은 샤롯 필딩이 불치의 병으로 숨을
거둠으로써 끝나는 진부한 스토리이다. 그럼에도 낙엽이 뒹구는 뉴욕의 공
원과 리차드 기어의 천연덕스러운 연기, 작곡가 가블리엘 야레의 낭만적 정
취어린 음악이 어우러져 가을이란 계절과 인생의 중반기를 훌쩍 넘어선 중
년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 준다. 얼마전 친남매인줄 알고 살아온 두남녀가
성인이된 다음 남매가 아닌 사실을 알고 시작한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그
린 어느 TV 드라마의 제목도 하필이면 '가을 동화"였을까. 계절의 순환과
인생의 역정은 함께 한다는 메시지를 담기 위해서 였을까.
그러나 우리를 둘러싼 모든 사회적 상황과 여건은 계절의 변화 마저 느끼
지 못하게 할만큼 삭막 하기만 하다. 그래서 이 가을은 더욱 쓸쓸한지도 모
른다. <성정홍(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