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호주에선 이른바 백호(白濠)주의라 하여 인간의 피부색을 따져가
며 유색인종 차별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던 때가 있었다. 유색인종의 이민
을 배척하고, 정치 경제에서 뿐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으로도 백인사회의 동
질성을 유지해야 한다던 어처구니 없는 백인 우월주의 운동이었다. 그같은
유색인 차별 사례는 이것 말고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15세기 신대
륙 발견 이후 유럽인들에 의해 잔혹하게 자행되던 흑인노예 무역, 18~19세
기 미국의 인디언 학살 추방,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 아시아에서의 갖가
지 만행 등등….
 물론 현대에 와서는 유엔에서 ‘인종차별 철폐 협약’까지 만들어질 정도
로 뿌리깊은 백인들의 우월의식이 많이 희석되기는 했다. 그러나 지금도 미
국같은 곳에서는 유색인들에게 테러를 서슴지 않는 소위 KKK단이란 게 툭하
면 물의를 빚고 있는 걸 보면, 시대착오적 인종차별 의식이 말끔히 가셔졌
다고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게다가 피부색이 마치 아름다움과 추함, 우열
(優劣)의 기준이라도 되는양 무작정 백인들을 동경하고, 또 어쩌면 백인들
에게 열등감마저 느끼는 유색인도 아주 없지는 않다. 오죽하면 백인을 닮고
싶어 성형수술을 하고, 갖가지 약품 화장품 등으로 피부색을 억지로 감추느
라 여념이 없는 이들까지 있다.
 하지만 이제 이런 따위의 일들을 모두 무의미하게 만들 때가 곧 올 모양
이다. 최근 ‘흑인들에게는 마이클 잭슨의 창백한 피부를, 백인들에겐 일광
욕으로 잘 태운듯한 적갈색 피부를 갖게 해주는 피부색 조절약이 개발되고
있다’는 외신보도가 나왔다. 미국의 한 제약사가 피부세포의 멜라닌 색소
형성을 촉진하거나 억제하는 작용을 하는 화학물질을 개발중이라는 것이
다. 그리고 개발이 성공하면 백인도 유색인이 될 수 있고 유색인도 쉽게 백
인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게 있다. 그렇게 되면 백인과 유색인종 중 누가
더 많이 그 약을 이용할까. 얼핏 생각해도 유색인이 더 많을듯 싶긴한데.
조상 대대로 물려온 피부색마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게 과연 낭보일는
지 비보일는지. <박건영(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