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후 패전국인 독일은 연합국과의 협상에서 항복은 받아 들이
겠지만 두 가지만은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나는 규모는 작더라도 일
정 수준의 군대를 보유할수 있게 해 줄것과 또 하나는 교육제도 만큼은 손
을 대지 말고 자신들에게 맡겨 달라는 것이었다. 전쟁에서는 패했더라도 군
대와 교육을 그들의 최소한의 자존심으로 여기고 있었다.
 미국의 매크랜드라는 학자는 학교교육에서 학생들에게 어떤 목표를 향해
서 좌절하지 않고 노력하는 달성동기를 부여하고 강하게 의식시켜주는 사회
는 반드시 몇십년후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한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80년
대 후반 일본대학 교수인 오오하시 미유키(大橋 幸)는 이러한 가설이 일본
에서도 적용되는지를 검증하는 조사를 실시했다. 1868년 메이지(明治)부터
1988년 쇼오와(昭和)까지 무려 120년 동안의 자료를 토대로 조사한 결과 1
세대 즉 30년후 그 영향이 나타났다고 오오하시교수는 밝혔다. 학교교육이
이처럼 먼 장래의 국운과 직결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입증 자료가 아니
더라도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독일은 교육을 군대와 동
일시 하고 남의 나라에 맡기지 않으려 했다.
 재미없는 수업, 학생들의 무반응, 사교육 천국, 학생지도의 불가능 상
태, 학교교육의 위기, 공교육의 붕괴등이란 단어들이 현재 우리나라 학교교
육의 현실을 나타내는 말들이다. 현재의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비극이라
할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학교교육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이미 추진중
인 대학 입시제도 개혁과 함께 자립형 사립고 지정 방안이 나왔다. 그러나
서울시 교육청과 전교조의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다.
 존 듀이는 교육을 '경험의 끊임 없는 개조'라고 정의하고 학생들에게 일
방적인 지식주입이나 반대로 학생들의 자발성에만 의존하면 불충분 하므로
여러 가지 경험에 참여 시킴으로써 창조력을 기를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하
고 있다. 교육제도의 틀을 바꾸는 것은 공교육 붕괴에 대한 겸허한 반성으
로 부터 출발, 이처럼 학생들의 창조력을 발휘할수 있도록 하는 방향에서
생각해야 한다. <성정홍(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