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밤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州) 무자파르나가르 지구의 한
마을에서는 젊은 남녀가 양가의 가족에 의해 지붕 끝에 목이 매달려 살해당
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이유는 복잡하지 않았다. 최고위 카스트
(caste) 신분 계급인 바라문(성직자) 집안의 소년(16)이 맞은편 동네에 사
는 평민, 상인의 하위 계급이자 불가촉(不可觸) 천민인 바이샤 집안 처녀
(20)와 교제를 해 결혼 금기(禁忌)를 깰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다. 귀족과의 혼인은 물론, 관직도 갖지 못했던 고대 로마의 평민층인 플레
브스(plebs) 신분의 비극과 같은 게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마
에 표시하는 백적황흑(白赤黃黑)의 계급 색깔 중 다른 색깔과는 결혼할 수
없다는 시대착오적인 신분제도의 어처구니없는 인도판 '명예살인(honor
killing)'이 아닐 수 없다.
명예 살인 전통은 터키에도 엄존한다. 두 달 전 아버지에 의해 칼과 도끼
로 무참히 살해당한 이스탄불의 13세 소녀 딜버 키나의 예만 봐도 그렇다.
이유는 길거리에서 소년들과 이야기하고 가출을 해 이웃의 조롱을 사는 등
가족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터키의 명예살
인범은 복역 기간이 짧다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 사회에도 명예살인이나 다
름없는 '자살 명령'이라는 게 있었다. 양반가 규수에게 명예롭지 못한 소문
이 들릴 경우 가문의 권위로 자살 명령을 해 결국 '명예 자살'을 하도록 했
던 것이다. 명예를 죽음보다도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었다.
명예살인이든 명예자살 명령이든 잔인하고 가혹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
나 그런 비극이 없도록 죽도록 명예를 지킴으로써 명예를 더럽히지 말자는
뜻만은 소중하고도 고귀하고 존중받을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오
늘날 우리 사회는 남의 명예 훼손은 물론 자신의 명예에도 별로 민감하지
않은 것 같다. 너무도 쉽게 훼손하고 훼손을 당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
들이다. 그까짓 명예쯤 한 때 좀 훼손당한들 어떠랴 싶은 것인가. 명예란
훼손해서도 안되고 훼손당해서도 안된다. <오동환(논설위원)>오동환(논설위원)>
명예의 죽음
입력 2001-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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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2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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