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월 한보를 시작으로 몇몇 대기업들의 연쇄부도가 나고 중소기업
들이 줄줄이 도산할 때만 해도 이것이 조만간 밀어닥칠 끔찍한 대환란(大換
亂)의 신호탄임을 짐작한 이들은 별로 없다. 그저 전에도 몇차례 경험했던
한때의 가벼운 경기불황쯤으로 여겼을 뿐이다. 그러기에 한보사태 이후 진
로 대농에 이어 기아의 부도사태에도 우물 우물 시간 땜질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11월 들어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하기 시작했을 때
는 이미 사태해결의 열쇠가 우리의 손을 떠난 뒤였다.
경상수지가 적자인 상황에서 외국자본들이 돈을 급작스레 빼나가자 달러
는 부족하고 환율은 마구 치솟았다. 게다가 단기외채를 급하게 갚아야할 상
황에까지 몰리자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는 급격히 고갈됐다. 마침내 국가경
제가 대외지급불능상태에 이르러 국제통화기금(IMF)에 지원요청을 할 수밖
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우리는 IMF가 요구하는 일방적인
요구들을 무조건 받아들여야만 했다. 한마디로 경제주권이 상실된 것이다.
구제금융을 받는 대신 IMF는 한국 정부에 초긴축 정책과 개방, 구조조정 등
을 요구했다.
경상수지 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각종 긴축정책과 구조조정은 대량실업과
낮은 임금, 높은 물가, 높은 세금으로 서민들을 거리로 내몰고 말았다. 실
업자가 100만을 넘어섰고 노숙자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하루 아침에 붕괴되
는 가정, 결식아동 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갔다. 어제까지 멀쩡하던
업체들이 턱턱 쓰러지고 해체되는가 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헐값에 외국으
로 팔려나가는 기업 금융기관들도 한 둘이 아니었다. 다시 생각하기조차 몸
서리쳐지는 끔찍한 고통의 세월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4년, 드디어 우리 정부가 IMF 차입금 잔액을 모두 상환한다고 한
다. 바로 내일이면 명실상부한 IMF 졸업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분명 국민
모두가 함께 자축할만한 일이다. 경제상황이 얼마나 나아졌고 실업자는 얼
마나 줄었으며 경제시스템은 어느만큼 단단히 정비됐는가 등은 차치하고라
도, 어쨌거나 경제주권은 다시 찾게된 셈이니까. <박건영(논설위원)>박건영(논설위원)>
자축할 일
입력 2001-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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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22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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