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의 앨 고어 인기가 연일 상종가를 치는 까닭은 최근 기른 그의
텁수룩한 수염이 수더분한 친근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수염
의 원래 의미가 변한 것인가 상한 것인가. 수염 하면 단군 할아버지가 아
닌 '단군 아저씨'처럼 보이는 새까만 수염과 그야말로 파뿌리 같은 산신령
의 새하얀 수염부터 연상할지 모르지만 사자(死者)를 심판하는 염라대왕이
나 옥황상제의 수염 길이는 대 자(5尺) 아니면 댓발(5丈)쯤 될지 모른다. '
수염이 대 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라는 그 대 자 길이(약 150㎝)의 길고 긴
수염이야 말로 남자의 권위와 권능의 상징이자 제왕, 신성(神聖)의 표징이
기도 했기 때문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신전 석상(石像)이 수염 그
대로의 모습이듯이 자고로 그랬다.
 텁석부리의 링컨과 마르크스, 엥겔스는 물론 염소수염과 콧수염의 레닌
과 스탈린, 히틀러, 히로히토는 어땠으며 호메이니, 아라파트는 또 어떤
가. 이슬람 국가에선 헤밍웨이나 숀 코너리처럼 수염을 기르도록 아예 율법
으로 정하고 있다. 아니, 만물의 형체인 '形'자부터가 수염난 얼굴의 상형
(象形)이다. 요즘엔 매일 수염을 깔고 잔다. 침대에 들어 있는 용수철이 바
로 '용의 수염(龍鬚)처럼 생긴 철사'라는 뜻이 아닌가. 일본에선 '수염의
날(八월八일)'까지 두어 수염 콘테스트를 열고 있다.
 수염 중에서도 턱수염을 수(鬚)라 하고 구레나룻을 염(髥)이라 한다. 합
쳐서 '수염'이다. 콧수염은 '자'라고 한다. 그러니까 엄격히 말하면 코밑
털은 '수염'이 아니다. 아무튼 호랑이 표범 살쾡이 등 고양이과 동물은 물
론 염소, 산양, 그리폰(사냥개), 토끼, 고양이, 쥐의 암컷까지도 수염이 있
는데 인간 여자에겐 수염이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 메기, 뱀장어, 미꾸라지
를 비롯, 이름 자체가 '수염고래'도 있고 잠자리, 메뚜기, 매미 등 곤충의
암컷까지도 수염이 있는데 인간 여자에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양귀비나
클레오파트라 같은 미인의 얼굴에 수염이 나게 하는 망발을 태초의 조물주
가 알아서 막았던 것일까. <오동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