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세계엔 강간이 없다. 소, 말, 돼지 등 가축이나 사자, 호랑이 등
네 발 짐승의 예만 들더라도 그렇다. 왜 그런가. 짐승의 경우 암컷이 네 발
로 땅바닥을 버티고 선 자세 위에 수컷이 업히는 듯한 이른바 '후위 성교
(rear intercourse)'로 교미가 이뤄진다. 따라서 그런 후위(後位) 흘레(교
미)란 암컷의 거부 없는 순응과 정확한 체위 각도의 이바지에 따른 동적(動
的) 조화가 필수적이기 때문이고 암컷의 의지 여하가 절대적이기 때문이
다. 조류, 곤충 등 오직 생식만을 위한 기타 동물의 교미도 마찬가지다. 물
고기 역시 일정한 위치에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이 그 위에 정액을 쏟음
으로써 생식 행위는 끝난다. 동물의 세계엔 강간 아닌 '강간 미수
(attempted rape)'만이 있을 뿐이다. 지렁이나 달팽이 등 수컷과 암컷 기능
을 한 몸에 지닌 자웅동체(雌雄同體) 동물은 말할 것도 없다.
 인간이 만약 두 발의 직립(直立) 보행과 남녀가 얼굴을 마주보는 '정면
성교(Face-to-face intercourse)'로 진화하지 않은 채 원시 유인원(類人猿)
식 후위 성교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면 어떨까. 역시 강간 아닌 '강
간 미수'만이 있을지 모른다. 반대로 동물의 세계에도 강제 교미가 성행한
다면 생태계 조화와 음양의 질서는 엉망으로 깨져버릴 것이다. '수남'이 아
닌 '암수'를 뜻하는 '음양(陰陽)'이라는 말에 '음'자가 앞에 붙는 까닭은
무엇인가. '자웅(雌雄)'과 '빈모(牝牡)'에도 '암컷 자(雌)'자와 '암컷 빈
(牝)'자가 앞에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몸이 크고 힘이 센 지상의 모든 수
컷이 암컷을 고이 떠받들고 보호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부부 강간'이란 짐승들 보기에도 부끄러운 말이다. 그런데도 미국, 영
국, 이탈리아 등이 70년대 여성운동으로 일찌감치 그 죄를 설정한 까닭은
무엇이며 독일 또한 97년 부랴부랴 뒤따른 까닭은 무엇인가. 부부의 강간
도 강간은 강간이고 부부의 의사는 동시에 존중돼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의 여성들이 그 죄에 관한 법률안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도 당연한 추세
다. <오동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