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은 조용히 사라지는 겁니다.” 지난 해 3월 수십년 몸담아온 정계
를 떠나면서 남긴 무라야마 도미이치(77·사민당) 전 일본총리의 변이다.
그때 그의 정계은퇴는 세간에 많은 아쉬움을 남겼었다. 칼같은 결단력과 폭
넓은 융화력으로 깊은 존경을 받아온 정치인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는 지난 96년 중의원 선거 때 “차기에는 출마하지 않겠다”고 했던 유권
자와의 약속을 지켰다. 은퇴를 말리는 숱한 이들에게 “더 이상 결단을 미
룰 경우 늑대같은 노인으로 불릴 것이다”라면서 이해를 구하기도 했다.
“사람은 돌아서는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더니 이 노정객이야말로 떠
날 때를 아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정치인으로 기억됐다.
 최근 네덜란드의 빔 콕(62)총리도 많은 이들에게 아쉬움을 남겨주면서 정
계은퇴를 선언했다. 내년 5월 총선이 끝나면 노동당 총재직을 후진인 아트
멜케르트(45) 원내총무에게 넘기고 정계를 떠난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7년
간 총리로 재직하면서 네덜란드에 유례없는 경제호황을 안겨주었고, 노동당
의 정치기반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래서 그
는 행복한 총리로 불렸고 인기 또한 높아 그만큼 아쉬움을 남겨주는 정치인
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한번 더 총리후보로 나설 수도 있을 것
이다. 그러나 그것이 국가나 당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다.” 그 역시 무라야마 못지않게 ‘뒷모습이 아름다운 정치인’으로 오래
오래 기억될듯 싶다.
 그같은 정치인들은 이들 말고도 또 있다. 지난 99년 “60세를 넘어서까
지 정치를 하지 않겠다”며 정계를 떠난 영국 자유민주당의 패디 애슈다운
(60) 전 총재, 2003년 1월 은퇴하겠다고 밝힌 미국 공화당의 제시 헬름스
(79) 상원의원 등이 그들이다. 그리고 그들 외에도 찾아보면 곳곳에 상당
수 더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선 그처럼 ‘뒷모습이 아
름다운 정치인’으로 과연 누가 있었던가. “남들은 다 떠나도 나만은 안된
다”는 이들이 적지않은 게 우리네 정치풍토라서일까, 좀처럼 쉽게 떠오르
지를 않는다. <박건영(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