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등 가족만 하더라도 요즘 말로 '환상적인 커플' '드림 배역'이 되기
는 어렵다. '夫夫婦婦子子女女'라고 할까, 지아비는 지아비답고 아내는 아
내답고 자식은 자식다운 구실과 배역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회사의 배
역도, TV 드라마의 배역도 마찬가지다. 저 사람은 저 자리에 잘 어울리는
데 저 배역의 저 사람은 영 글렀다는 평을 듣기가 십상이다. 한 나라의 요
직은 더 말할 것도 없다. '君君臣臣父父子子'라는 '논어' 말씀처럼 자고(自
古)로, 동서를 막론하고 임금다운 임금과 신하다운 신하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흔한 말로 '적재적소'지만 적재(適材)의 적소(適所),
적재의 적격(適格), 적재의 적역(敵役)이 어려운 까닭은 무엇이며 '환상적
인 드림 배역'이 썩 드문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배역을 뜻하는 영어 cast
탓은 아닐까. 내던져버리다, 돌팔매질하다는 뜻처럼 아무렇게나 내던지듯
쉽게 정해지는 듯한 배역 탓은 아닐까.
 인재란 어느 시대나 넘치게 마련이다. 다만 누가 누구를 알아보고, 누가
누구를 추천해 제대로 쓰느냐에 달렸다. '볼테르보다도, 보나파르트보다
도, 그 어느 집정관(執政官)보다도 재기있고 뛰어난 인물은 얼마든지 있
다'는 말은 19세기 프랑스의 대정치가 탈레랑의 명언이다. 프랑스 최고의
사상가 볼테르와 최대의 영웅 나폴레옹보다도 위대한 인물은 얼마든지 묻
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관운장의 적토마, 항우의 오추마, 이성계의
팔준마와 같은 명마(名馬)와 준마(駿馬)는 얼마든지 있지만 그런 말을 한
눈에 알아보는 백락(伯樂)이나 박로(博勞)는 드물다는 뜻이고 백락일고(伯
樂一顧)에 의해 세상에 끌려나오는 명마, 준마도 범상한 눈으로는 그 말을
타보고 부려보기 전에는 알아채기 어렵다는 것이다.
 DJ 정부의 주연급 배역이 크게 바뀐다. 과연 '워스트 캐스팅'이 아닌 '드
림 배역'은 이뤄질 것인가. 그런데 코끼리처럼 커 보이던 인물도 일단 큰
자리에만 올라가면 코알라처럼 작아 보이기가 일쑤인 까닭은 무엇일까. 이
른바 균등질(均等質) 사회, 평균지향 사회 탓일까. <오동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