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자들에 따르면 벼는 기원전 7000~5000년대에 인도에서 재배하기 시
작했고, 중국에선 기원전 5000년경에 재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
에는 그보다 훨씬 뒤인 기원전 2000년경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것으로 알려
져 있다. 그후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처럼 한국도 쌀의 주요 생산국 중 하
나가 됐으며, 또 쌀은 한국인의 주식이 되어오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의 배를 채우기에 쌀은 언제나 턱없이 부족했다.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쌀밥을 먹을 수 있는 가정은 극히 일부에 한정됐었다.
쌀밥은 커녕 보리 콩 조 등 온갖 잡곡을 섞은 밥으로도 끼니를 때우기 어려
웠던 게 대부분 민초들의 삶이었다. 풀뿌리 나무열매에 귀리가루 메밀가루
등을 물에 푼 멀건 죽으로 연명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특히 일년 중 모든
곡식이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익지 않은 늦봄 무렵엔 여기 저기 아사자(餓
死者)들도 적지 않게 나왔다. 그래서 이 시기를 춘궁기(春窮期) 또는 보릿
고개라 부르며 두려워하기도 했다.
 보릿고개가 사라진 것은 지난 70년대 초 통일벼 대량재배로 쌀 수확량이
크게 늘면서부터이다. 그후 국민들이 어느 정도 허기를 면하게 되자 “통일
벼는 맛이 없다”는 소리가 나오게끔 됐고, 우리를 기아(飢餓)에서 해방시
켜준 통일벼는 지난 84년 이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리고 곧 이어
한국의 음식문화에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햄버거 피자 등 패스트푸드
가 우리의 입맛을 공략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젊은이들 사이에선 거의 주식
으로 자리잡아갈 정도까지 왔다. 당연히 쌀 소비량이 크게 줄었고 여기에
연속 풍년까지 겹치다 보니 갈수록 늘어나는 쌀 재고가 되레 골칫거리로 되
고 있다.
 쌀 재고가 넘쳐 쌀값이 폭락하면 가뜩이나 어려운 농가 살림이 또 큰 걱
정이다. 그래서 정부는 올해엔 재정을 잔뜩 풀어 수매량을 대폭 늘리지만,
내년부터는 쌀 증산정책을 포기한다고까지 한다. 쌀을 둘러싼 안팎의 환경
을 감안할 때 분명 불가피한 선택일 수밖에 없긴 한데, 그 두렵던 보릿고
개 시절이 바로 엊그제 같기만 하니…. <박건영(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