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하늘색이나 '하늘색'은 아니다. 황사 낀 봄 하늘색이나 먹구름 뒤덮
인 여름 하늘색도 아니고 칙칙한 회색의 겨울 하늘색도 '하늘색'은 아니
다. '하늘색=가을 하늘색'이다. 코발트색, 회회청(回回靑) 청자빛 하늘색
이 '하늘색'이다. 그런 가을 하늘색이 '하늘색'의 대표색이다. 모파상은 소
설 '여자의 일생'에서 가을 하늘을 '수정과 같다'고 했고 독일의 소설가 G
하우프트만은 '거대한 수정 접시 같다'고 묘사했다. 황순원(黃順元)은 '고
양이 눈알'에 비유했는가 하면 이효석(李孝石)은 또 '물고기 등같이 파랗
다'고 썼다. 작가가 아닌 눈엔 또 어떻게 비쳐들까. 도예가의 눈엔 청자 색
깔 그것일 것이고 성악가의 눈엔 '소프라노 색깔'로 드높이 올라가 있을 것
이다. '야훼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색깔'이라고 할 사람은 성서 연구가
쯤 될 것이고 철학자라면 또 '하늘색이란 어디까지나 하늘색'일 뿐이라며
퉁명스레 말할지도 모른다.
 천의무봉(天衣無縫), 하늘의 직녀가 짜는 옷은 솔기가 없다고 했던가.
그 솔기 없고 실밥 하나 튀지 않은 새파란 천의(天衣)야말로 구름 한 점 없
이 새파랗게 드높기만 한 우리의 가을 하늘일 것이다. 시골 철길 둑과 마
을 언덕마다 늘어선 코스모스와 싸리꽃이 밑그림인 우리의 가을 하늘이라
니! 도대체 누가누가 거품 타월로 싹싹 문질러 닦아 놓은 파란 수정 접시
란 말인가. 너무 새파랗다못해 차라리 무섭다. 쳐다보는 얼굴이 비칠 듯한
거울 같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저 하늘 어딘가의 '하늘 나라'와 그곳 대통령
이 보일 것도 같기 때문이고 인도 신화에 나오는 그 선악을 감시하는 구생
신(俱生神)이 눈을 부릅뜨고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저 가을 하늘이야말
로 한 점 부끄럼까지도 비쳐지는 마음의 거울이 아닌가.
 그런데 하느님이 보우하사 베푸신 보석 같은 우리의 가을 하늘을 도심에
서 볼 수 있는 날이 점점 줄어든다니 얼마나 답답한 비극이란 말인가. 물
론 대기 오염 탓이고 자동차 배기 가스 등으로 인한 스모그 탓이다. 우리
의 가을 하늘색을 되찾을 길은 없는가. <오동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