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월 12일 오후, 미국의 하원 회의장. “지금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은 전쟁을 하자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어떻게 투표를 하든 투표가
끝난 다음에는 서로 반대자를 비난하지 밀고 결과에 단결합시다. 여기에는
집권당인 공화당도 없고 다수당인 민주당도 없는 바로 우리 조국 미국만 있
을 뿐입니다.” 하원의장 포레(공화당)가 부시 대통령이 내놓은 걸프전 수
행권위임에 대한 찬반투표에 앞서 연설하자 여야 의원들이 모두 일어나 기
립박수로 화답했다. 투표결과는 찬성 250 반대 183표였다. 과반의석의 야당
(민주당)이 부시에게 전쟁수행권을 승인해준 것이다.
같은 날 늦은 오후 상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수 야당인 민주당의원 10
명이 부시의 전쟁수행권 위임을 지지, 찬성52, 반대47표로 승인했다. 여기
에는 백악관과 의회가 적전분열의 모습을 보이면 오히려 이라크 후세인의
반미투쟁결의를 강화시켜준다는 공동인식이 깔려 있었다.
부시는 상·하양원 모두 야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여론 즉
의회를 무시하고서는 전쟁수행이 어렵다고 판단, 전쟁수행위임권을 정식으
로 요청해 승인을 이끌어 낸 것이다. 쿠웨이트를 점령한 이라크를 응징하
기 위한 이러한 투표를 두고 버드상원의원(민주당)은 “과거 38년간 1만2천
822회의 투표를 했으나 이번 투표가 가장 중요하고 괴로운 투표였다”고 말
할 정도로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한다.
걸프전 당시 대통령인 조지 H W 부시대통령의 아들 조지 W 부시가 10년만
에 2대에 걸쳐 다시 중요한 전쟁수행을 앞두고 있다. 펜타곤과 뉴욕의 무역
센터 빌딩 테러참사에 대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테러범과 그 후원국
가까지 응징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미 하원도 하루만에 이를 민첩하게 승
인했다. 위기를 다시 한번 국민과 국가 단합으로 극복해 나가는 모습이다.
부시의 보수 강경노선 정책이 테러를 자초했고 국가안보 정보망에 구멍이
뚫렸다는 비난도 있지만 의회나 언론은 이를 덮어두고 있다. 일이 있을 때
마다 툭하면 장관 해임결의안을 내거나 여야가 서로 네탓으로 책임전가 논
쟁만 벌여 내부갈등 모습을 보이는 우리의 정치풍토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
다. <성정홍(논설위원)>성정홍(논설위원)>
미국의 저력
입력 2001-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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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9-1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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