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가을을 소리의 계절이라고 했다. 귀뚜라미에 각종 풀벌레 소리도
구슬프게 들리는게 가을이라서 그랬나 보다. 지금은 공해에 찌들어 도시에
서는 겨우 귀뚜라미 소리만 들을 정도이니 계절의 감각도 세월따라 무디어
질까 걱정이다. 내일(23일)이 벌써 추분(秋分). 춘분(春分)과 함께 연중 낮
과 밤의 길이가 똑같은 날이다. 이날부터 이제 낮보다는 밤의 길이가 점차
길어진다.
논밭의 곡식을 거둬들이고 고추도 따서 말리는 등 본격적인 가을걷이가
이때부터 시작된다. 호박고지 박고지 고구마순도 거두고 산채를 말려 겨울
철 나물 입맛을 준비하는것도 지금이다. 그뿐인가, 1년중 날씨가 가장 좋
아 무슨일을 하든 활동하기 가장 좋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 이제
부터 시작된다. 그런데도 옛 중국인들은 천고마비의 계절을 가장 싫어 했다
고 한다.
옛 한서(漢書)에 보면 서력기원 전후해서 중국 북방에서 일어난 유목 민
족인 흉노족은 추운 겨울이 오기전 가을에 겨울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봄 여
름내내 잘먹여 살찐 말을 몰고 남쪽의 중국본토에 있는 민가를 휩쓸고 다니
며 약탈을 일삼았다. 이래서 유래된 말이 천고마비이고 중국인들은 흉노들
의 습격이 다반사인 이 가을을 싫어 했다던가. 한서에는 '흉노는 가을에 오
는데 말은 살찌고 화살은 강하기 그지 없었다'고 기록해둬 사실(史實)을 입
증한다. 그러니 천고마비의 계절은 흉노들에게는 겨울을 준비하는 즐거운
계절이었고 중국인들에게는 증오의 시기였던 셈이다.
그런데 우리들의 가을은 어떤가. 3분기 경제성장률 0.5%, 하반기 기업체
채용 40% 감소로 인한 극심한 실업난 가중, 전셋값 폭등, 주가폭락, 경기침
체의 장기화등 우울한 소식속에 서민들은 더욱 숨쉬기 조차 어렵다. 여기
에 정치권 마저 주가 뻥튀기를 한 G&G그룹에 대한 고위 정치실세 개입설이
나도는 이른바 이용호 게이트를 둘러싼 공방으로 서민생할 보호는 실종된
듯한 분위기이다. 설상가상격으로 미국의 테러 보복전으로 경기전망은 더
욱 암담하고 유가폭등의 조짐마저 보이고 있으니 이가을이 더욱 두렵기만
하다. 우리네 천고마비(千苦痲痺)의 계절은 언제쯤 끝날것인가. <성정홍>
(논설위원)>성정홍>
우울한 가을
입력 2001-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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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9-22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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