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반공 민주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지난 1968년에 만들어졌던 ‘국민교육헌장’의 몇 구절이다.
1960년대 말부터 70, 80년대를 살아온 우리 국민은 대부분 이 헌장에 대한 기억이 남다를듯 싶다. 특히 학교 또는 군대에서 이 헌장을 외우지 못해 벌이나 기합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이 헌장은 1968년 12월 5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낭독하는 국가적 선포식을 가졌을 뿐 아니라, 그뒤 국가행사나 학교행사 등에서는 이 헌장을 꼭 읽도록 했었다. 또 학생이나 군인은 의무적으로 외워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이를 그다지 이상하다거나 거북스럽게 여기진 않았다. 그 이전 자유당 시절부터 이미 “우리는 대한민국의 아들 딸…”로 시작되는 ‘우리의 맹세’를 외워본 경험이 있기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저 외우라면 외웠을 뿐, 이 헌장이 명문이든 추상적 낱말의 유희에 불과하든 별로 상관하지 않으려 했다. 군사정권의 잔재로 일제시기 교육칙어를 본뜬 군국주의 교육지표라는 비판도 없지 않았으나, 대개는 그다지 귀를 기울이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설사 그렇다 해도 당시로선 달리 어찌해볼 수가 없기도 했겠지만.
어떻든 그렇게 요란스럽던 헌장이었건만 박정희 정권 종말과 함께 점차 시들해졌고, 급기야 1995년 헌장선포 28주년을 끝으로 그 운명을 다하고 만다. 이런 식이었다 보니 과연 이 헌장이 우리의 국민의식에 얼마나 파고들어 무얼 남겼는지도 언뜻 판단하기가 어렵게 돼버렸다.
뉴욕시 교육위원회가 최근 시내 모든 공립학교에서 ‘충성서약’을 암송토록 결의했다. 지난번 월드트레이드센터 등에 대한 테러사건을 계기로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키자는 취지에서라 한다. 얼핏 지난 시절 우리의 ‘국민교육헌장’을 떠올리게 해준다. 물론 그와는 조금 다를지 모르나, 미국 같은 사회에도 그런 게 존재할 수 있다니 왠지 신기하다는 느낌도 든다. <박건영(논설위원)>박건영(논설위원)>
뉴욕의 충성서약
입력 2001-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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