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2천744m)보다도 1천32m나 높은 탓인가 일본 후지(富士)산의 첫 눈은 이르다. 94년엔 평년보다 22일 이른 8월21일 첫 눈(2∼3㎝)이 내렸다. 한여름이 채 떠나기도 전이다. '눈=겨울'에 대한 완강한 거부처럼 금년의 후지산도 9월4일 첫 눈이 왔고 9월22일은 영하 7도에다 9㎝나 쌓여 흰 베레모를 쓴 모습이었다. '홋카이도(北海道)의 지붕'이라 불리는 다이세쓰(大雪)산도 이름 값을 하듯이 9월21일 짙은 단풍 위로 첫 눈이 비꼈다. 스키장 개장도 일러 후지산 스노 타운 예티(Yeti)의 금년 오픈이 10월20일이었다. 전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는 아프간의 첫 눈도 10월까지 참지 못한다. 지난 10월 20일 힌두쿠시 산맥 안주만령(嶺)에서 취재 중인 프라하의 '라디오 리버티' 기자 안드레이 바비츠키 일행은 무릎까지 차는 적설과 영하 10도의 추위에 묶여 오도가도 못했다.
하기야 만년설, '천추설(千秋雪)'이라 불리는 눈이 에베레스트 고봉이나 알프스, 적도 밑인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최고봉 키보(Kibo) 등엔 늘 덮여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런 눈은 으레 사철 거기 있는 탓인지 계절 맞춰 오는 눈만큼 신비롭지 못하다면 어거지 발상일까. 입동 추위와 수능시험 추위가 포개진 채 한라산에 내린 우리의 첫 눈과 만발한 설화(雪花)의 신비로움에 비하랴! 신혼여행 커플과 열대 관광객의 탄성 합창이 아니더라도 너무나 아름답고 지나치게 신비롭다.
아이누어(語)의 눈은 '우파시'다. '우'는 '서로', '파시'는 '달린다'는 뜻이니까 하늘로부터 '서로 달려오는 존재'가 눈이다. 달려오든 걸어오든 첫 눈, 첫 설화야말로 아름답다. 도시의 빌딩 모서리를 잠시 비끼는 자국눈(薄雪)이든 펄펄 내리는 현동소설(玄冬素雪)이든 그렇다. 육화(六花) 천화(天花) '하늘 꽃'이다. 서설(瑞雪) 옥설(玉雪) 향설(香雪) 무설(霧雪) 세설(細雪)도 아닌 풍설(風雪) 비설(飛雪) 취설(吹雪) 상설(霜雪)에다 광설(狂雪)까지도 아름답고 고이 바람결이 빗질한 스카블라(波狀雪)는 또 어떤가. 그러나 작년과 같은 설화(雪禍)만은 싫다. <吳東煥(논설위원)>吳東煥(논설위원)>
첫눈
입력 2001-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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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1-08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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