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겨울로 들어섰다. 입동도 지났고 아흐레 후면 소설(小雪)이다. 거리에 나뒹구는 낙엽이 아직은 만추(晩秋)의 서정(抒情)을 남기고 있지만 을씨년스럽게 날씨가 찌푸리면 겨울의 황량함을 안겨준다. 올해 11월은 예년보다 섭씨 2∼3도 낮은 기온분포를 보이고 추위가 더 일찍 올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보가 시민들의 가슴을 더 움츠러들게 만든다.
영국의 11월만큼 음산한 날씨가 없는 모양이다. 영국인들의 표정이 웃음이 적고 밝지 못한 것은 이러한 날씨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와 셸리도 그들의 시 '소네트'와 '서풍에 부치는 노래'에서 영국의 겨울을 어두운 계절(Dark Days)이라고 표현했는가 보다. 그러나 날씨가 음산하고 찌푸린다고 해서만 다크 데이스는 아닐 것이다.
올해 한국의 대입 수험생들만큼 어두운 계절을 맞고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작년보다 평균 40∼50점씩 성적이 떨어져 모두가 망연자실한 것은 그만두고라도 앞으로 2개월 이상 학교 선택을 위해 더욱 치열한 눈치보기의 제2 대장정을 계속해야 하니 말이다. 고교생 3명중 1명이 우울증을 보이고 이중 20%는 정신적치료가 필요하며 이러한 원인중 50%이상이 성적 때문이라니 수험생들이야 오죽하랴. 비단 이들 뿐인가. 불투명한 경기전망속에 오갈데 없는 대졸실업자의 급증, 불경기속에 다시 늘어나는 퇴직실업자들은 또 어떤가. 이러한 마당에 주5일 근무제 관철을 위한 동투(冬鬪)는 오히려 사치스럽게 여겨진다.
“정치인은 국회에 기업인을 불러내 온종일 한가한 질문만 하고 공무원은 쓸데 없는 기업규제를 하며 언론은 감정적 보도를 일삼아 한국의 앞날이 걱정된다”는 퇴임한 호리에 전 제일은행장의 말도 차라리 모든 이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한 사람의 단견이었으면 좋겠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내년 대선을 1년이나 앞두고서도 벌써부터 혼미를 거듭하고 있으니 언제까지 이 불안한 정국이 계속될까. 2001년 한국의 11월은 이렇게 어두운 계절이 되고 있다. 그래도 '다크 데이스'를 노래한 셸리의 시구 한 구절에서 희망을 걸어 본다.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으리…'. <성정흥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