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말미 받아/ 본집에 근친갈제/ 개잡아 삶아얹고….’ 조선시대 1년 12달의 농사일과 풍경을 그린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8월(음력) 대목에 나오는 구절이다. 모처럼 친정을 찾아가는 며느리에게 개고기를 주어 보낸다는 내용이다. 사돈댁에 보낼 만큼 대접받는 음식이었던 모양이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개고기를 즐겨 먹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여름 뜨거운 뙤약볕 아래 농사일을 하다 보면, 그 힘든 일을 뒷받침할 영양이 필요했고, 그 공급원이 바로 개고기였다 한다. 소는 값비싼 노동력이었고, 돼지 또한 귀하다 보니 천상 흔히 기르던 개를 잡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성인 남녀의 절반 이상은 개고기를 먹는다고 할 만큼 한국인에겐 즐기는 음식중 하나로 되어 있다.
하지만 개고기 만큼 수난을 겪은 음식도 꽤 드물성 싶다. 서구인들은 물론이고 한국의 동물애호가들로부터도 혐오식품이라며 집중 공격을 받는 것이 바로 개고기다. 그러다 보니 음식 이름도 개장국 보신탕 사철탕 영양탕 등 수차례 바꾸어야 했다. 우선 보신탕이라는 명칭부터가 그랬다. 원래 우리는 개고기를 ‘된장으로 끓인 장국에 말아 먹는다’는 뜻에서 개장국이라 불렀다 한다. 그런데 이승만 정권 시절 ‘개를 먹는 야만적인 행동을 하지 말라’는 서구인들의 압력에 굴복, 규제를 하다 보니 눈가림식으로 슬며시 보신탕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사철탕 영양탕이란 이름 역시 비슷한 사정으로 만들어졌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서구의 동물애호가들이 개고기를 먹는 한국인들을 욕하며 ‘올림픽 보이콧까지 불사하겠다’고 나섰다. 그러자 정부도 눈치보며 혐오식품으로 규정했고, 이에 대응해 또 다른 눈가림식 이름인 사철탕 영양탕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내년 ‘월드컵’을 앞두고 국제축구연맹(FIFA)이 보신탕을 또 문제삼고 나왔다. 제프 블래터 회장이 ‘즉각 개를 먹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는 것이다. 보신탕 수난의 시대가 다시 닥치는 모양인데, 이의 옳고 그름은 차치하고라도 이제 또 어떤 이름으로 둔갑하게 될는지 그게 궁금하다. <박건영 (논설위원)>박건영>
보신탕 수난
입력 2001-11-13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1-11-13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