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미국 안락사 협회(헴록 협회)의 이사 데레크 험프리가 안락사에 관
해 쓴 '마지막 출구'(Final Exit)란 책이 미국에서 베스트 셀러가 된적이
있다. 험프리는 암 환자인 아내와 다른 3인의 환자를 안락사 시킨 경험을
토대로 죽음에 이른 환자가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자살할수 있게 할것인
지, 또 의사가 어떻게 하면 법적으로 벌을 받지 않고 자살을 방조할 것인지
를 썼다. 그의 결론은 잔인하리 만치 명쾌했다. 죽음을 선택하는 환자에게
시판되지 않는 강력한 치사량의 수면제를 구해 먹도록 권했다. 이럴 경우
환자는 자살이고 의사는 자살방조로 기소 될만도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방
법이 널리 이용되고 있기 때문에 법적 처벌을 면한다는 논리다. 미국의 경
우 워싱턴주는 91년에, 캘리포니아주는 92년에 주민투표에 필요한 발의 기
준을 훨씬 넘는 인원의 서명을 받아 투표에 부쳤으나 결국 안락사의 합법화
에는 실패했다.
 이에 비해 네덜란드는 1993년 세계 처음으로 엄격한 조건을 붙여 안락사
를 합법화했다. 네덜란드가 안락사 법제화에 국민적 합의를 이룬 배경은 자
택 혹은 노인홈에서 단골의사나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는 환자가 많
다는데 있었다. 의사는 환자뿐 아니라 그 가족과도 흉허물 없이 사귀고 상
의하는 그런 풍토였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최근 대한 의사협회가 소극적 안락사를 회원의사들에게 허용, 이를 둘러
싸고 다시 찬반논쟁이 일고 있다. 소극적 안락사가 현실적으로 시행되고 있
는데다 죽음에 이른 환자가족들의 정신적 경제적 고통을 줄이자는게 협회측
의 주장이다. 일본의료계에서는 소극적 안락사를 존엄사라고 구분한다. 환
자 본인과 가족의 의사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는 안락사와 같다. 다만 안
락사는 적극적으로 환자를 편안하게 죽음에 이르도록 유도하는 것이고 존엄
사는 수명연장을 위한 적극적 의료행위를 중지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어찌됐든 안락사는 인간의 존엄한 생명을 다루는 것인 만큼 현실인정과
경제적 이유만으로 허용여부를 결정할일은 아니다. 이에 앞서 안락사 선진
국들의 사례를 연구,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할줄로 안다.
<成 定 洪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