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927년 9월 후백제왕 견훤은 신라의 수도 경주를 침입, 경애왕을 죽이고 김부를 새 왕으로 세웠다. 또 숱한 보물과 병기를 약탈하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 이 사실을 알게된 고려태조 왕건은 신라에 사신을 보내 조문하고, 친히 정예병 5천을 이끌고 대구 공산에서 견훤의 대군과 맞서 싸웠다. 하지만 왕건은 전투에서 대패한데다 견훤의 군대에 포위되어 위급한 사태에 빠지고 말았다.
그때 고려군의 기병대장 신숭겸장군은 자신의 얼굴이 왕건과 매우 닮았음을 이용, 왕건을 대신하여 목숨을 바칠 것을 결심한다. 그리고 왕건의 옷을 입고 적진에 들어가 힘껏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다. 한편 견훤의 군사가 신숭겸을 왕건으로 알고 정신없이 싸우는 사이 왕건은 가까스로 포위망을 뚫고 달아나 목숨을 건진다.’ 왕을 대신하여 목숨을 바친 신숭겸장군의 용맹과 충절은 길이 길이 후세인들의 표상이 되어 숭앙받고 있다. 얼마 전엔 KBS 1TV 주말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그때의 상황이 재연되어 많은 시청자들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미군의 집중적인 공격과 반군 북부동맹의 공세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사실상 궤멸단계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정작 미 군사작전의 주된 목표인 9·11테러 용의자 오사마 빈 라덴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하다. ‘이미 아프간을 떠나 파키스탄으로 도주했다’고 하는가 하면, ‘아직도 아프간에 남아 게릴라전을 준비하고 있다’ ‘심복 몇명과 아프간 산악지대를 이리 저리 도망다니고 있다’는 등 그를 둘러싼 언론보도들이 여간 혼란스럽지 않다.
이런 와중에 빈 라덴이 미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자신과 꼭 닮은 사람 10명을 아프간 내부에 심어 놓았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사실 여부야 두고 보면 밝혀지겠지만, 흡사 왕건과 신숭겸의 고사를 흉내낸듯한 느낌을 준다. 빈 라덴이 그 고사를 들었을 리도 없을텐데, 극악한 테러리스트 세계에도 신숭겸 같은 인물들이 나올 수 있는가 싶어 그저 놀랍다. 그나 저나 가짜 빈 라덴이 10명씩이나 대기하고 있다면, 진저리나는 이 전쟁도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으니 그것이 안타깝다. <박건영 (논설위원)>박건영>
가짜 '빈 라덴'들
입력 2001-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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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1-2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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