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사형선고를 받고 독배를 마셨을 때 일이다. 온몸에 독기운이 돌기 시작하자 소크라테스는 천천히 자리에 누웠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듯 임종을 지켜보던 제자 하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크리토, 내가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는데 자네가 대신 갚아주게.” 빚을 졌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교과서적 교훈이 담긴 일화다.
대부분 선량한 사람들은 빚을 두려워 한다. 그리고 비록 어쩔 수 없이 빚을 졌다 해도 저승에 가서라도 꼭 갚아야 하는 게 빚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꼭 그런 사람들만 사는 게 세상은 아니다. 더러는 빚 지는 걸 되레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빌린 남의 돈으로 치부하고 빚으로 잔치를 벌인다. 빚낸 돈으로 실컷 흥청대다가도 정작 갚을 때가 되면 ‘배 째라’는 식으로 뱃심을 내민다. 그리고 이런 이들 때문에 항상 피해를 보는 건 당연히 정직한 사람들이다.
기껏 금융안정을 도모하고 부실기업을 살리자며 엄청나게 쏟아부은 이른바 공적자금이 엉뚱한 곳으로 줄줄 새고 있었음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감사원 특감 결과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금융기관과 기업의 임직원 5천여명이 무려 7조원 이상을 본인 또는 가족 명의로 빼돌려 보유·은닉하고 있음이 적발된 것이다. 엄청난 금액을 배우자와 자녀에게 증여까지 했는가 하면, 해외로 거액을 빼돌린 이들도 있다. ‘빚낸 돈으로 치부하고 잔치 벌인다’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정말 뱃심좋은 파렴치범들이다.
예상대로 정부는 부랴부랴 합동조사단을 가동한다는 등 후속조치를 서둘고 있다. 은닉재산을 철저히 가려내고 파렴치범들을 단호히 사법조치하며 감독부서에 대한 문책도 따를 모양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반드시 취해야할 조치임은 두말할 여지도 없다. 그런데도 이를 지켜보는 국민 마음은 영 떨떠름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뒤늦게 엄단하고 문책한들 기왕 새버린 자금이 얼마나 다시 메워질까 싶은 것이다. 이러다 자칫 국민혈세 부담이나 다시 가중되는 게 아닌지 그것이 또 두렵기도 하다. <박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