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알려진 서울의 용산지역은 나라가 외세에 짓밟힐 때마다 거의 어김없이 외국군의 주요한 주둔지가 되곤 했다. 700여년 전 고려를 침략한 몽고군은 이곳을 병참기지로 사용했으며, 임진왜란 때 평양전투에서 쫓겨온 왜군 병력도 이 일대에 주둔한 바 있다. 1882년 임오군란 때는 청나라 병력이 주둔했었고, 1894년 청일전쟁이 터졌을 때는 일본군이 머물렀었다. 또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했을 때 일본은 이 일대에 수만명이 주둔할 수있는 병영을 세우기도 했다. 그후 일본은 여기에 조선주둔 일본군사령부와 조선총독부 관저, 20사단 사령부를 세웠으며 약 2만명의 병력을 계속 주둔시켰다.
그러나 이 지역의 기구한 운명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그해 9월 미군이 진주하면서 이곳의 병영 일체를 접수했던 것이다. 미군은 6·25 이전 잠시 철수했으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재차 들어왔다가 휴전협정이 체결된 후 용산을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고, 지난 1978년엔 이곳에 한미연합사령부를 세웠다.
수도 한복판에 100만평이 넘는 외국군 기지가 있다는 것은 결코 상쾌한 일일 수없다. 더욱이 이로 인해 서울의 균형발전이 가로막힌다면 더 말해 무엇하랴. 그래서 우리 정부와 국민은 줄기차게 용산 미군기지의 이전을 촉구해왔다. 마지못해 미군측도 10년 전 이전을 약속, 한·미 양국이 합의각서까지 교환했다. 하지만 미군은 좀처럼 이 기지를 넘겨줄 마음이 없는 모양이다. 약 100억달러로 추정되는 이전비용을 꼬투리 잡아 차일 피일 미루더니, 급기야 이곳 일부에 대규모 아파트단지(미군 장기주거용)를 건설하겠다고 나섰다. 연차적으로 10단계에 걸쳐 8층짜리 20개동 1천66가구분을 건설한다니, 완공까지 도대체 몇년이 걸릴지도 가늠이 안된다. 아무리 선의로 해석한다 해도 이는 분명 ‘이전 백지화’에 다름 아니다.
어떤 생각에서 그처럼 엉뚱한 계획을 세웠는지 모르나, 우리 정부도 이번만큼은 반드시 단호한 조치를 내놓아야 겠다. 자칫 이 일이 반미감정의 기폭제로 작용할까 두렵다. <박건영 (논설위원)>박건영>
용산 미군기지
입력 2001-12-11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1-12-11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
-
투표진행중 2024-11-22 종료
법원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벌금 100만원 이상의 유죄가 최종 확정된다면 국회의원직을 잃고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없게 됩니다. 법원 판결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