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한 기침과 함께 새빨간 피를 토하는 폐병이야말로 '악질적(惡質的)인 악질(惡疾)' 중 하나다. 그 못된 질병은 숱한 천재의 목숨부터 앗아갔다.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와 체호프의 목숨을 각각 60세와 44세에 앗아갔고 괴테로부터 그의 절친한 친구 실러를 46세에 뺏아갔다.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는 58세에, 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인 바르토크도 64세에 폐병으로 죽었다. 화가 반 고흐와 '피아노의 시인' 쇼팽을 각각 37세와 39세로 요절케 한 악질도 폐병이었고 천재 시인 이상(李箱)을 27세의 피 뜨거운 나이에 저승으로 데려간 것도 폐병이었다. 종교사상가 함석헌(咸錫憲)선생이 크게 영향을 받은 일본의 종교가 우치무라(內村鑑三)의 69세 인생을 마감케 한 것 또한 폐병이었다. 피아니스트며 작곡가인 리스트가 폐병으로 75세까지 산 것은 장수한 셈이었다. 일본 작가 이노우에(井上靖)처럼 여러 가지 노인성 질환을 정리해 죽음으로 안내하는 대표적인 질환 역시 폐병이다.
'케 세라 세라'의 미국 작곡가 리빙스턴도 지난 10월 17일 LA의 한 병원에서 폐병으로 일생을 마감했다. '비틀즈'의 멤버였던 조지 해리슨(58)을 지난달 30일 명부(冥府)로 끌고 간 것도 폐암이라고 했다. 폐암으로 죽어간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역시 영화 '왕과 나' '십계(十戒)' 등의 까까머리 명배우 율 브리너일지 모른다. 그가 85년 10월 10일 뉴욕 코넬 메디컬센터에서 65세의 삶을 끝내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줄담배였다. 한데 어이없는 것은 75년 미국의 노벨 의학상 수상자 하워드 테민박사가 94년 2월 폐암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다. 그가 바로 최고의 암 연구가이자 철저한 금연운동가였기 때문이다. 한 때 후진국 병으로 여겼던 폐병이 담배 탓만은 아닌 것 같다.
폐암이 위암을 제치고 한국인이 가장 잘 걸리는 암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 한국인에게만 있다는 이른바 'K 결핵균' 때문인가 또 다른 이유 탓인가. 옛날에야 영양실조가 큰 원인이었다지만 요즘이야 아무래도 '환경 실조', 즉 환경 오염 때문일 것이다. 거국적인 방지책이 아쉽다. <吳東煥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