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보면 조선시대 만큼 이혼이 쉬웠던 때도 또 없었을 성 싶다. 우선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는 유교적 이데올로기만 보아도 그렇다. 이것은 처(妻)에게 일곱가지 잘못이 있을 때 쫓아낼 수 있다는 것으로, 그 내용을 열거하면 이렇다. 즉 처가 시부모를 잘 모시지 못하거나 대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하는 일, 음란 투기 나쁜병이 있는 일, 말이 많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일 등 일곱가지다. 별 희안한 논리가 다 들어 있지만, 이쯤되고 보면 남편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처를 내칠 수 있었을 법 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혼이 거의 허락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른바 삼불거(三不去)라 하여 처가 쫓겨나면 돌아갈 곳이 없다거나, 부모의 3년상을 같이 치렀다거나, 가난할 때 시집와 뒤에 부유하게 되었다거나 할 때는 비록 칠거를 범했어도 처를 내칠 수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또 조선조 말 고종 때에 이르러서는 삼불거 외에, 자식이 있으면 무조건 이혼할 수 없게 하여 사불거(四不去)가 됐다고도 한다.
물론 이같은 일련의 조치가 여성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되레 여성들을 한없이 옥죄기 위한 정절이데올로기 때문이긴 했다. 다시 말해 여성의 정절을 지키게 하자니 재혼이 금지됐고, 또 재혼을 못하는 사회에서 이혼녀가 많아진다는 것은 곧 심각한 사회문제를 뜻했던 것이다. 당시 여성들이 가사(家事) 외엔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었던 상황에서 이혼 양산은 곧 여성실업자 양산을 의미했던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그 덕분에 하루 아침에 가정이 깨지는 일은 상당히 막을 수 있지 않았나 싶긴 하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이혼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상위권인 8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이다. 작년 한국의 이혼율은 인구 1천명당 2.5쌍으로 이탈리아 보다 무려 다섯배나 높았다고 한다. 유교적 이데올로기가 빛을 잃어서인지, 아니면 이제 우리나라도 먹고 살 만해졌고 남녀평등이 이뤄진 탓인지 모르겠으나 분명 자랑스러운 수치는 아니다. 이마저도 사회발전의 한 단면이라고 강변한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박건영 (논설위원)>박건영>
四不去
입력 2001-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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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18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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