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때문에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여. 나는 한번도 여러분을 떠난 적이 없어요. 때로는 어렵고 험하게 살아왔지만, 그래도 약속은 늘 지켰어요. 나를 멀리하지 마세요.’ 빈한한 농부의 사생아에서 고귀한 아르헨티나의 퍼스트 레이디로 등극 (1945년), 가난한 이들과 노동자들을 위해 헌신했던 에바 페론. 그녀를 그린 영화 ‘에비타’의 주제곡 ‘Don’t cry for me Argentina’의 첫 몇구절이다. 몇년 전 마돈나가 열연했던 이 영화는 한국에서도 상영돼 숱한 관객의 심금을 울린 바 있다.
그 에비타의 나라 아르헨티나가 지금 깊은 혼란에 빠져 있다. 대규모 군중시위와 폭동의 와중에서 대통령이 사임하고 새 임시대통령이 취임하긴 했으나, 파탄지경에 이른 경제난과 사회불안이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를 않다. 한때는 남미 최대의 부국(富國)으로 세계 7위의 경제대국을 자랑했다지만, 지금껏 그때의 영광을 기억하는 국민은 극히 드물다. 어쩌다 이런 지경에까지 다다랐을까. 물론 여기엔 반세기 이상 거듭돼온 갖가지 정치 경제 사회적인 악순환들을 꼽을 수 있으나, 우선 가깝게는 전전 정권인 카를로스 메넴 정부의 실정부터 드는 이들이 많다. 만성적 재정적자에도 불구 국민의 인기만 인식, 지출을 확대하여 국고를 바닥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999년 집권한 페르난도 델라루아 정부가 뒤늦게 초긴축 정책을 단행했지만, 그 고통은 온통 노동자와 연금생활자 등 빈곤층의 몫일 뿐이었다. 정부 부채가 무려 1천320억달러임에도 불구, 권력을 가진 부유층은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기에 여념들이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 과다한 외채의존과 구조조정 실패, 국민고통을 외면한 정치권의 정쟁몰두 등도 국가 파탄에 한몫들을 톡톡히 했음은 물론이다.
만성 재정적자, 인기성 지출 확대, 외채의존, 구조조정 실패, 부유층 재산 빼돌리기, 정쟁몰두 등등…, 개중엔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요인들도 꽤 있다. 그래서 그만큼 더 경계와 주의각성이 요구된다고도 하겠다. 비록 먼 나라 비극이지만,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