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매년 연말에 선정하는 '올해의 한자'에 '싸움 전(戰)'자가 뽑혔다. 금년을 상징하는 한자 1자를 전국적으로 모집한 결과 '싸움 전, 두려워할 전, 벌벌 떨 전(戰)'자가 압도적이었다는 것이다. 사상 최대의 9·11 뉴욕 동시 테러로 전세계가 전쟁 분위기로 돌변, 일본 자위대까지 파병한 데다가 국내적으로는 리스토라와 실업, 광우병 등으로 전전긍긍한 1년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리스토라'란 영어 리스트럭처링(restructuring), 즉 재구성이고 구조조정이다. 그리고 그 구조조정→감원→실업으로 인해 생긴 말이 '리스토라 이지메'…'감원 학대'다. 하기야 35세 이상의 감원을 앞장서 단행한 소니는 물론 14만 사원 중 무려 10만명을 지난달까지 감원한 일본 최대의 전화통신 회사 NTT의 예만 들더라도 '감원 학대'는 짐작할만한 일이다.
스미토모(住友)생명이 공모한 사자성어(四字成語)도 화제가 됐다. 그 우수작이 '만국흉통(萬國胸痛)'이다. 9·11 참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만국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는 것이다. 우편분포(憂便粉包)와 심침퇴사(心沈退社)도 우수작으로 뽑혔다. 탄저균 공포로 인한 '근심스러운 우편 가루'와 구조조정 한파로 인해 '무거운 마음으로 퇴사'를 했다는 뜻이다.
일본의 '올해의 한자'와 사자성어는 우리 대한민국에도 그대로 해당된다. 세계적인 전쟁 공포로 전전긍긍, 벌벌 떨었고 그 여파로 남북관계마저 얼어붙어 아무리 햇볕을 쬐어주려 간청해도 나오지 않았고 녹지 않았다. 36만2천여명이 8천30억원의 실업급여를 받을만큼 숱한 실업자가 쏟아졌고 끼니를 거르는 어린이와 노인만도 10만명을 헤아린다고 한다. 게다가 '무슨무슨 게이트' 시리즈의 부정부패와 정치권의 혼미는 국가적인 실조(失調)로까지 번졌다. 그래선가 우리 대학교수들이 며칠 전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오리무중(五里霧中)에다가 점입가경(漸入佳境),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그럼 금년 1년 성인 한 사람 평균 145병이나 퍼마셨다는 '쐬주'가 모두 화풀이 술이었다는 말인가? 지는 해에게 정중히 묻고 싶다. <吳東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