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자면서 꾸는 꿈과 눈을 뜬 채 꾸는 꿈이 있다. 전자가 춘향이 옥에 갇혀 꾸는 꿈, 노생(盧生)이라는 소년이 여옹(呂翁)의 베개를 베고 잠들어 꾸는 꿈, 동화 '잠자는 숲 속의 미녀'가 꾸는 그런 꿈이라면 후자는 눈을 말똥말똥 고리 눈으로 뜬 채 멀쩡히 꾸는 꿈이다. 그렇게 눈을 뜬 채 꾸는 꿈을 가리켜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희망'이라고 했다. 잠 속의 꿈이 두서없고 허황된 흑백 꿈이라면 눈을 뜨고 꾸는 꿈은 눈이 부신 찬란한 햇살 속의 장밋빛 꿈이거나 영롱한 보랏빛 꿈이다. 그런 꿈이 바로 새 해 정초에 꾸는 새 희망 새 꿈이고 뜯어고쳐 리모델링한 꿈, 버리고 새로 꾸는 새 희망, 새 소망이다.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세우고(一日之計在于晨) 일년의 계획은 봄에 세운다(一年之計在于春)고 했지만 그 봄, 새 봄의 시작이 바로 누구나 새 꿈 새 희망으로 새 계획을 세우는 1월 1일 정초부터다. 신춘문예 당선작을 1월1일 신문에 발표하고 신춘 방송 특집, 신춘 음악회, 신춘 마당놀이, 신춘 휘호, 신춘 바둑, 신춘 요리 등 온갖 신춘 행사도 정초에 시작한다. 그러니 2월만 되면 봄은 이미 헌 봄이 되고 '입춘'도 되기 전에 새 봄은 꼬리를 감춰버린다. 하기야 새 세월, 새 계절, 새 태양은 없다. 자고 나면 다시 뜨는 태양이 헤밍웨이의 눈에는 새로울지 모르지만 쇼펜하워나 니체의 눈에는 점점 더 헌 태양과 낡아빠진 햇살로 비칠지도 모른다. 출근길도 헌 길, 회사도 헌 회사, 악수하는 사람들도 헌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나 새 해 정초면 모두가 '새'자 암시와 '새'자 환각에 눈을 뜬 채 꿈을 꾸고 새 희망의 새 계획을 세우는 것은 어떤 논리적 과학적 검증에 의해서가 아니다. 1년 2년 세월을 자르고 시간을 쪼개 새로움을 다짐하지 않으면 그 세월이 너무나 방만하고 새 마음 새 희망으로 쇄신하지 않으면 그 인생이 너무나 단조롭고 따분하지 않겠는가. 요는 새 해 새 꿈, 새 희망의 실천이다.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말처럼 희망이란 멋진 아침 식사가 되지만 형편없는 저녁 식사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吳東煥(논설위원)>吳東煥(논설위원)>
새해 새꿈
입력 2002-0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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